| 장애 딧고 특급호텔 경영자 "우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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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구는 작지만 배포 크고 배짱 좋은 호텔 캐슬 이은종(61) 사장에겐 작은 고추가 맵다는 옛말이 딱 어울린다.
이 사장은 호텔을 접수하려던 지역 폭력배들을 물리쳐가며 호텔 캐슬을 특급호텔로 만든 사람이다.
폭력배와 맞서 호텔을 지킨 이 사장은 정작 소아마비로 거동이 불편하다. 어린 시절 친척 결혼식장에서 사고를 당했지만 본인은 지난 50여 년간 선천성 소아마비인 줄 알고 지낸 것. “호텔이 안정을 되찾은 10년 전에 병원에서 종합진단을 받았습니다. 의사가 왼쪽 발이 불편한 것이 소아마비가 아니라 사고를 당해 대퇴부 탈골이 일어났기 때문이라고 하더군요. 지난 50년간 장애 때문에 많은 고생을 했는데….” 폭력배와 맞서 호텔 지켜… 체구는 작지만 배짱 ‘두둑’ 이사장은 43년 경기도 평택에서 태어났다. 33살에 남편을 저 세상으로 보낸 어머니는 이사장에게 각별한 정을 쏟았다. 어머니 사랑 덕에 이씨는 본인이 장애인이라는 사실을 초등학교에 들어가서야 알았다. “지나가던 동네 아이들이 절름발이라고 놀리는 것을 보고 내가 남과 다르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지만 공부에 대한 열의가 강했던 이사장은 초등학교 시절 내내 상위권의 성적을 유지했다. 중학교 진학을 앞두고 이사장은 세상의 냉정함을 처음으로 맛봤다. 전교 3등의 성적으로 당시 상위권 학교이던 평택중학교에 무난히 합격하리라 생각했지만 평택중학교는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그의 입학을 거부한 것. 그는 신설 학교인 둔포중학교에 수석으로 합격한 후에야 평택중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다. 이 사건은 어린 이사장에게 많은 상처를 남겼다. 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한 이사장은 대학 졸업 후 취직대신 동대문 로터리에 제과점을 차렸다. “몸이 안 좋아서 취직은 힘들다고 생각했죠. 어머니로 부터 장가 밑천을 얻어 20평짜리 구두점을 수리해 제과점을 시작했습니다.” 처음 하는 장사지만 수완을 발휘해 나름대로 재미를 보았다. 그런데 사업을 시작한 지 1년쯤 지나서 돈이 야금야금 없어지기 시작했다. 젊은 사장을 얕잡아 본 여직원이 금고에 손을 대기 시작한 것이다. “현장을 목격해 범인을 잡았습니다. 그런데 10원짜리 빵 장사를 하는 제가 왠지 한심해 보였습니다.” 그는 그 사건 이후 가게를 정리하고 집장사를 시작했다. 돈이 넉넉하지 않았지만 땅만 사고 나머지 건축비용은 융자를 얻어 집을 지어 팔았다. 사업초기에는 건축 붐으로 짓기가 무섭게 팔려 쏠쏠한 재미를 보았다. 호사다마라고 한창 경기가 좋았는데 ‘1·21’무장공비 침투사태가 터지면서 경기가 급속히 위축됐다. 집은 많이 지어놨지만 도무지 팔리지 않았다. 결국 이 사장은 돈을 모두 날리고 고향인 평택으로 내려갔다. 고향에서 이사장은 부인 김영옥씨를 만났다. “사업이 망해 무일푼이었는데 무얼 믿고 시집왔는지….”이 사장은 친척에게 50만원을 빌려 신혼살림을 시작했다. 새로운 사업구상을 하던 이씨는 안정리에 있던 임야를 개발해 미군 숙소 임대사업을 시작했다. “미군들이 숙소로 사용하던 집들은 대부분 재래식 화장실을 사용하고 있었죠. 미군들이 가장 불편하게 생각한 점은 화장실 문제였습니다. 이 점을 개선해 수세식 화장실을 갖추어서 임대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방 하나에 400달러씩 받았는데 인기가 대단했습니다.” 이사장이 임대사업을 시작한 안정리 일대는 현재‘힐타운’이라 불리는 미군 집단 주거지역이 되었다. 현재 2만평 대지에 100여 가구가 거주하고 있다. 이씨는 미군 숙소 임대사업으로 돈을 벌자 77년 수원 역전에 ‘럭키슈퍼’라는 대형 슈퍼마켓을 연다. 이 때 이사장은 또 한번 수완을 발휘한다. 개장 초 직접배달을 다니던 이사장은 배달을 시키는 사람이 대부분 가정부임을 파악하고 소위 말해 ‘미남계’를 쓴다. 건장하고 잘생긴 배달원을 고용해 여자 가정부들의 마음을 잡은 것이다. 이 같은 전략으로 럭키슈퍼는 호황을 맞게 된다. 사채업자에 돈 빌려줬다 ‘거덜’… 채권자 설득해 재기 그는 여기서 또 한 번 사업을 확장한다. 수원은 예로부터 ‘갈비’로 유명했다. “서울에 있는 친구가 내려오면 으레 갈비를 대접했죠. 당시 식당들은 대부분 시내중심에 있어 주차가 힘들고 시설이 낙후됐죠. 한가한 시외에 식당을 열면 성공할 것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 이 사장은 83년 우만동에 대지 500평 건평 700평의 대형 갈비집을 오픈했다. 식당을 오픈하면서 지인(知人)에게 2억8,000만원을 빌렸다. 그의 판단대로 식당은 오픈하자마자 손님으로 가득 찼다. 하지만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고 평소 호형호제하던 지인은 빌려준 돈 2억8,000만원을 당좌 수표로 바꾸어 달라고 요청했다. “평소 친하게 지내는 형님이고 당좌수표를 잘 안 써봐서 위험한 것을 모르고 있어 부탁대로 수표를 발행해 주었습니다. ” 당좌 수표를 받은 지인은 약속과는 달리 수표를 돌리기 시작했다. 이씨는 갑작스럽게 들어오는 당좌수표를 막을 길이 없자 지인에게 다시 높은 이자로 딱지를 매입하게 됐고 이런 악순환은 계속 반복되었다. 이씨는 1년 동안 원금 2억 8,000만원에 이자만 2억원을 지인에게 줬다. “장사는 잘돼서 돈은 벌었지만 사채업자인 지인의 농간으로 빚 갚기에 정신 없었죠.” 그러던 중 친구로부터 관광호텔을 짓게 되면 은행에서 대출을 받을 수 있다는 말을 듣게 된다. 이사장은 빚을 갚을 수 있는 마지막 방법을 모색하던 중 관광호텔을 짓게 된다. 그러나 대출 받은 돈은 대부분 건설업체에 들어가게 되고 지인은 호텔이 잘되는 것을 보고 더욱더 많은 당좌수표를 돌리게 된다. 호텔을 오픈한지 4개월 후 이씨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부도를 맞았다. 얼마 후 이사장은 죽기를 각오하고 채권자들을 찾아가 일일이 설득하며 신뢰를 회복해 나갔다. “처음에는 제 말을 믿지 않았던 채권자들도 지인의 횡포를 듣고 양해를 하더군요” 180명의 채권자들은 파산선고를 받은 그를 복권될 때까지 숨겨주었다. 2년 뒤 그는 복권을 하고 호텔로 복귀할 수 있었다. 호텔에 돌아온 그에게 또 다른 시련이 놓였다. 지역깡패들이 나이트클럽을 접수하고 운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더 이상 추락할 곳이 없다고 생각한 그는 깡패들에게 굽히지 않고 조폭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그로부터 1년 후 이씨는 그들을 물리치고 호텔을 정상화시킨다. 현재 호텔 캐슬은 경기도 지역의 유일한 특급호텔로 대지 2,500평 건물 6,000평 규모의 초대형 호텔이다. “17년 전 호텔을 개관하면서 경기도 최고의 호텔로 만들겠다고 임직원들과 약속했죠. 이제는 500여 명 임직원을 최고의 대우를 받는 호텔리어로 만들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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