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랜드 피아노를 들어놓을 수 있는 아파트를 갖는 게 소원이었는데, 이제 피아노만 구입하면 되네요(웃음)."
결혼 7년 차 주부 가은영(30세. 가명)씨는 지난해 7월 경기도 부천에 33평 아파트를 장만했다. 결혼 6년 만에 이룬 값진 결과물이다.
4살 무렵부터피아노를 배웠고 그때부터그녀의 꿈은 줄곳 세계적인 피아니스트가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대학 시절 피아노보다 더 좋은지금의 남편을만나자 오랜 꿈이하루아침에 '현모양처'로 바뀌었다. 대학 졸업과 동시에 결혼을 했다. 23살 철부지 주부는 좋은 사람과 함께 지낼 수 있어 마냥 행복하고 좋았단다.
그러던 어느 날, 학업과 일을 병행하던 남편에게 미국 유학을 갈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 짧게는 3년, 길게는 5년 정도의 시간이 필요했다. 고민 끝에 남편 혼자 유학길에 올랐다. 결혼생활 2년 만에 부부는 그렇게 생이별을 해야 했다.
신혼집을 정리하고 은영씨는 친정으로 들어갔다. 전세자금 8000만원 중 2500만원은 유학자금으로 보내고 나머지 5500만원의 종자돈으로 악착같이 돈을 모으겠다고 다짐했다. 남편이 돌아올 때까지 둘이 함께 오순도순 살 집을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피아노 개인 레슨으로 아이들을 지도하던 은영씨는 허리띠를 바짝 조였다. 피아노는 사교육의 '기본'으로 여기는 요즘엄마들의 높은 교육열 덕분에 월수입은 좋은 편이었다. 하지만 내집마련이란 뚜렷한 목표가 생기고 나니 지출은 줄이고 수입을 더욱 극대화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아이들 지도에 있어서는 빈틈이 없었다. 맡은 아이들마다 최선을 다했고, 항상 성실하게 지도했다. 평소 꼼꼼하고 예민한 성격탓에 '대충대충 시간 때우기'란 있을 수 없었다. 당연히 엄마들 사이에선 믿을만한 피아노 선생님으로 소문이 났고 개인 레슨 의뢰가 점점 더 늘어났다. 3~4명의 입시생까지 지도하다 보니 늦은 밤까지 일을 하는 날도 허다했다.
친정집에서 생활하다 보니 생활비 부담이 없었다. 차비 및 본인 용돈 조금을 제외한 모든 금액을 저축에 쏟아 부었다. 많게는 월 600만원 이상을 저축하는 달도 있었다. 주위에선 "돈이 돈을 버는 것" 이라며 주식 및 투자 상품으로 더 큰 수익률을 올릴 수 있다고 조언했지만 은영씨는 손사래를 쳤다. 그녀는 제2금융권의 비과세 상품을 위주로 한 보수적 투자를 선택했다.
"주식투자했다가 빚더미에 올라앉았던 친척이 있어 투자라는 말만 들어도 겁부터 냈어요. 워낙 소심하고 투자 자체에 둔감한 편이라 그냥 열심히 벌어서 저축하는 것이 최고의 재테크라고 믿었죠."
3년여 동안 1억8000여만원을 모았다. 아파트 전세자금으로 묶어놓았던 5500만원과 이자 등을 포함해서 현금 2억5000만원이 통장에 들어 있었다.
그때부터 틈틈이 집을 보러 다녔다. 친정 근처(경기도 부천)에 살고 싶은 마음에 청약은 생각하지도 않았다. 대신 부천에서 입지 조건이 좋은 중동-상동 신도시를 중심으로 한 급매물을 집중적으로 노렸다. 부동산 중개업을 하시던 아버지 친구 분의 도움을 받을 수 있어 다행이었다.
하지만 깐깐한 은영씨의 입맛에 딱 맞는 물건을 만나기는 그리 쉽지 않았다. 입지가 좋으면 평수가 마음에 들지 않았고, 평수며 실내 구조가 마음에 들면 입지나 층수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렇게 집을 보러 다닌지6개월 만에 지금의 집을 만날 수 있었다.
백화점 및 할인마트가 가깝고 공원을 옆에 끼고 있어 주변 환경이 매우좋았고, 평형이며 층수 실내 구조 등 모든 것이 마음에 들었다. 전 주인은 온화한 인상의 60대 노부부였는데 할머니가 집을 깔끔하게 사용한 점도좋았다. "뉴질랜드에 있는 큰아들이 초청을 해서 급작스럽게 집을 팔게 됐다"며 "여생을 보낼 작정으로 마련했던 집이라 막상 팔아 버리기 쉽지 않다"는 노 부부의 말에 쉽게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지은 지 5년 된 33평형 아파트였다. 매매가격은 3억2000만원으로 부족한 7000여만원은 2년거치 3년 상환 조건으로 대출을 받아 해결했다. 다행히 은영씨가 홀로 구군분투하며 마련해 놓은 집으로 이사하기 전에 남편이 돌아왔다. 남편은 여전히 철부지처럼 보이는 아내가 이렇게 값진 귀국선물을 안겨줘서 고맙고 미안하다며 눈시울을 붉혔단다.
은영씨는 현재 피아노 레슨을 잠시 쉬고 있다. 좋은 직장에 취업한 남편 덕도 있지만, 다음달이면 부부의 사랑스런2세가 태어나기 때문이다.부부는 7000만원이나 되는 대출금 상환을 목표로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다.그래도 은영씨는 싱글벙글이다. 머지않아 꿈에 그리던 그랜드 피아노를 사주겠노라고 남편이 약속을 했기 때문이다.
"정말 열심히 돈을 모았지만 운도 좋았죠. 또래 친구들처럼 평범한 직장인이었다면 이렇게 빨리 내집마련에 성공하긴 쉽지 않았겠죠(웃음). 하지만 '그때 좀 더 수익률 높은 투자 상품을 알았으면...' 하는 아쉬움도 커요. 그랬다면 대출 안 받고도 내집마련에 성공했을지도 모르는 일이 잖아요. 이제는 둘이 힘을 합쳐 재테크 공부 열심히 하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