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빨간 양말의 화려한 부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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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수포장지 업계의 대부 이종삼(48) 사장. 그의 첫인상은 독특하다. 까까머리에 빨간 웃옷, 검은 바지, 빨간 양말, 검정고무신, 이것이 10년 동안 고집한 그의 ‘독점 패션’이다. 특히 빨간 양말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신고 다니기에 그는‘빨간 양말’로 통한다. 이 사장의 ‘독점패션’이 시작된 것은 10여 년 전부터다. “빨간색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힘을 솟게 하고 검정고무신은 어려웠던 과거를 잊지 않게 하기 때문이죠” 그의 독특함은 사무실에도 이어진다. 사무실에 걸려있는 그의 좌우명 ‘세상에 돈이 최고다. 세상에 믿을 놈 없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솔직하고 직선적인 그의 성격을 그대로 표현한 것이다. “좌우명이 특이하다고요? 저는 하나마나한 얘기나 고상한 척하는 것보다는 솔직하고 분명하고 싶습니다. 옷이든 뭐든 저는 남들을 따라가지 않고 제 식대로 확실하게 눈에 띄고 싶습니다.” 15세때 상경… 월급 3,500 받으며 생산직 근무 경북 영천이 고향인 이 사장. 그는 고향에선 성공한 사람으로 꼽힌다. 하지만 고향이 그다지 탐탁치 않다. 어린 시절 고생이 항상 머릿속에 맴돌고 있기 때문이다. “고향에 가면 어린 시절 고생한 기억이 떠올라 솔직히 고향이 싫습니다.” 이 사장은 8남매 중 다섯째로 태어났다. 부모님은 가난한 소작농으로 근근히 살림을 꾸렸다. 어린 시절 이 사장은 항상 배가 고팠다고 한다. 하루 세끼 나물죽이 대부분이고 학교 다닐 때는 도시락조차 제대로 싸 가지고 다니지 못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소풍 때도 도시락을 쌀 수가 없어 따라가지 못한 적이 많다고 한다. 먹는 것 외에 그가 어린 시절 가장 부러워했던 것은 검정고무신, 가정형편이 어려운 이사장은 그 흔한 검정고무신 조차 구입할 만한 형편이 못돼 혼자만 짚신을 신고 학교에 다녔다고 한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1년 뒤인 72년 이 사장은 가난이 싫어 무조건 상경한다. “밥이라도 제대로 먹어보는 것이 소원이었습니다.” 을지로 6가에 있는 누나 집에 얹혀 살기 시작한 것이다. 돈을 벌기 위해 이 사장은 중소 포장업체에 취직한다. 월급 3,500원을 받는 생산직 사원이었다. “영하 10도의 날씨에도 연탄 난로 하나만 달랑 피워놓고 군용 침대에서 웅크린 채 오들오들 떨며 잤던 일들이 생각납니다.” 무엇이든 진득하게 파고드는 것이 이 사장의 특징이다. 그는 30년의 직장생활을 오직 특수 포장지 한 가지 직종에만 매달렸다. 타고난 부지런함과 깔끔한 일솜씨로 그는 남보다 빠르게 승진하고 신용을 얻을 수 있었다. 이 사장은 항상 일등으로 출근해서 맨 꼴찌로 퇴근했다. 이 사장은 표면상 ‘초등학교 졸업자’라고 하지만 사실은 틀린 이야기다. 83년부터 새벽 4시에 일어나 검정고시 학원을 다녀 2년만에 중·고등학교 학력을 취득했고 뒤이어 신학대학교까지 졸업한 엄연한 대졸자이다. 그가 신학을 전공하게 된 이유는 어려운 형편으로 못먹고 힘들었던 생활 탓에 심한 위장병을 얻어 고생하다 신앙의 힘으로 나은 것이 계기가 되었다. 한때는 ‘목회자의 꿈’을 품기도 했다. ‘목회자의 꿈’품고 신학대학까지 졸업 이 사장이 사업을 하게 된 것은 너무나 우연이었다. 다니던 회사가 부도를 맞아 문을 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부도 후 공장이 경매로 넘어가 새 주인을 만나기 전까지 그가 임시로 회사 운영을 맡았는데 그는 여기서 능력을 인정받아 거래업체의 도움으로 95년 회사를 차리게 된 것이다. 창업 당시 그가 가진 돈은 230만원이 전부였다. 이 사장은 할부로 1,000만원짜리 기계 한대를 장만하고 직접 기계를 돌리며 문을 열었다. 돈이 없어 재료비를 대는 것도 걱정이었지만 생산품이 인정받으면서 서서히 자리를 잡아갔다. “공법이나 디자인도 제가 직접 합니다. 특히 액체 한약재 포장에 흔히 나오는 사슴그림은 제가 처음 도안한 것이죠. 지금은 아주 흔해졌죠.” 호사다마라고 잘 나가던 이 사장도 IMF의 복병을 만났다. 몇몇 거래처에서 돈을 떼이게 된것이다. 화가 난 이 사장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냈다. 돈을 떼먹은 회사들의 이름을 액자로 만들어 사무실에 걸어놓음으로써 이곳을 드나드는 동종업계 사람들 앞에 명단을 공개한 것이다. 이것이 알려지면서 당사자들로선 그 외의 거래에 있어서도 타격을 입을 수도 있어 결국 하나 둘씩 찾아와 돈을 갚기 시작했다. 그 후 이 사장은 어음을 받을 때 나름대로 노하우(?)가 생겼다고 한다. “겉부터가 화려한 어음은 십중팔구 사고가 납니다. 받으면 안되지요. 하지만 명함 속에 자신의 집 전화번호를 쓴 사람, 가계수표에 쓴 글씨가 악필인 사람은 믿을 만합니다.” 동맥 터져 죽음의 문턱 오가… “살아있는 게 행복” 이 사장의 이레특수포장은 현재 연간 매출 100억원에 특수포장지 업계 1위를 기록하고 있다. 92년 동맥이 터져 이 사장은 죽음의 문턱까지 간 적이 있었다. 생존확률이 50%라는 의사의 통보를 받고 2달 동안 병원에 입원해 있었다. 가족들은 묘지까지 알아볼 정도로 절박한 상황이었다. 다행히 치료에 성공했지만 지금도 완치된 것은 아니라고 한다. “생사의 기로에 서보니깐 세상이 다르게 보이더군요. 살아있는 것 자체가 더할 나위 없는 행복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 사장은 교육관도 특이하다. 고등학교 졸업반에 다니는 아들이 있는데 성적이 바닥이다. 공부와는 담을 쌓고 지낸 지 이미 오래됐다고 한다. 하지만 이 사장은 지금껏 공부하란 말을 해본 적이 없다. “전부 다 서울대 가면 화장실 청소는 누가 합니까. 학교 때 말썽쟁이들이 사회에선 더 성공하던데요. 이런 사람 저런 사람 다양한 사람들이 있는 게 세상 아닙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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