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초반 아랍에미리트(UAE)의 도시국가 두바이(Dubai)는 ‘사막의 기적’이라 불리며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고유가를 바탕으로 축적한 오일머니에다 막대한 차입자본을 더해 대규모 신공항 건설, 인공섬 조성, 7성급 호텔 건립 등 부동산 프로젝트에 천문학적인 자금을 쏟아 부은 결과다. 하지만 기적은 오래지 않아 ‘신기루’로 변했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자산가치가 하락하면서 막대한 채무부담을 견디지 못한 개발사가 휘청거리면서 두바이 정부는 모라토리움(채무상환 유예)을 선언했고, 전 세계 주식시장은 큰 충격에 빠졌다. 기업의 위기가 국가 위기로 전이된 사건이었다.
두바이 월드 모라토리움 선언
2009년 11월 25일(현지시간), 두바이 정부는 국영기업인 두바이월드(Dubai World)와 자회사인 부동산개발사 나킬(Nakheel)의 부채 590억 달러에 대한 상환기간을 2010년 5월까지 6개월간 유예해달라고 채권단에 요청했다. 공식적인 국가 부채는 아니지만 채무상환 유예 대상이 국영기업이라는 점에서 전 세계는 이를 사실상 두바이 정부의 모라토리움 선언으로 받아들였다.
세계 최대 산유국 가운데 하나이자, 전 세계의 부러움을 샀던 두바이의 몰락은 금융시장에 큰 충격을 안기는 결과로 돌아왔다.
모라토리움 선언 이튿날인 11월 27일 코스피는 장이 열리자마자 ‘팔자’ 주문이 쏟아지며 이날 하루 동안 4.69%가 폭락했다. 한국뿐 아니라 아시아 주요국과 유럽 증시도 큰 폭으로 하락했다. 두바이 채권 발행에 참여했던 바클레이즈, 도이체방크, BNP파리바, ING그룹, 스탠더드앤차터드, HSBC 등 글로벌 은행들은 엄청난 규모의 자금이 묶이는 상황을 맞았다.
세계 금융사에 ‘두바이 쇼크’로 기록된 이날의 사건은 선망의 대상이던 두바이의 숨겨진 민낯이 공개되는 계기가 됐다. 넘쳐나는 오일 달러를 주체하지 못하는 부국(富國)으로 여겨졌던 두바이가 실은 막대한 빚에 의존해 연명해왔다는 충격적인 사실이 밝혀졌다.
2009년 2분기 말 기준 UAE의 해외차입 규모는 1230억 달러였는데, 이 가운데 900억 달러 가량이 두바이가 빌린 돈이었다. 이는 두바이 GDP의 180%에 이르는 규모였다.
금융위기가 한창이던 2008년 9월 말 한국의 외채가 4255억 달러로 GDP 9291억 달러의 50%에 못 미쳤다는 점을 감안하면 두바이의 무리수가 어느 정도였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빚에 의존했던 ‘부동산 불패’ 신화
두바이의 화려한 겉모습은 다른 나라로부터 빌린 돈으로 쌓아올려진 모래성이었다. 2000년대 중반 전 세계 부동산 시장이 활황세를 보이자 두바이 정부는 해외차입을 통해 연일 새로운 개발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두바이 남부 사막지역에 연간 1억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공항이 건설되기 시작했고, 뉴욕 맨하탄보다 큰 인공 섬 프로젝트 ‘팜 데이라’도 추진됐다.
빌린 돈으로 시작한 사업이었지만 두바이 정부와 개발업체들은 두려움이 없었다. 두바이 부동산 가격이 2005년 이후 분기당 20~30%씩 폭등했기 때문에 빚을 얻어 사업을 진행한 후 자금을 회수하는 것은 익숙한 일이었다.
모두가 외면했을 뿐 사실 두바이의 위기 징후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할 당시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 금융위기 여파로 부동산 등 자산 가격이 하락하면서 두바이는 각종 건설 프로젝트가 취소돼 긴급자금이 투입되는 등 어려운 상황에 빠져들고 있었다. 이로 인해 2008년 10월에는 모든 은행에 대해 예금자 보호조치를 내리고 투자설명회를 여는 등 두바이 정부가 금융지원과 자금조달을 위해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두바이 쇼크의 교훈 “빚 앞에 장사 없다”
두바이 쇼크가 전 세계 금융시장에 남긴 교훈은 명확하다. 과도한 빚은 결국 파멸을 불러온다는 진리였다. 두바이의 금융위기는 민간 부문의 무리한 차입에서 발생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이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일어났다. 두바이 정부가 국영기업의 부채를 줄이기 위해 공공부채를 늘리는 방식을 사용함으로써 민간부문의 위기를 국가 위기로 확대시키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두바이 쇼크’는 제 아무리 부유한 국가라 해도 무리한 차입이 이어질 경우 결국 감당할 수 없다는 명확한 메시지를 남겼다.
다행스러운 것은 두바이 쇼크가 우려했던 것보다는 단기적인 충격에 그쳤다는 점이다. 부채가 얼마인지조차 제대로 파악할 수 없었던 리먼 브라더스 파산과 달리 두바이는 부채규모가 비교적 명확했고, 액수도 상대적으로 적었다는 점이 사태확산을 막은 주요원인으로 평가된다. UAE 중앙은행과 두바이의 형제국가인 아부다비가 즉각적인 지원에 나선 점도 조기수습에 큰 힘이 됐다.
글. 정일환 기자(imthetop@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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