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련서비스

검색

검색어 입력폼

금융 메인메뉴

커뮤니티

커뮤니티 하위메뉴

게시판 운영정책

전문가칼럼

[머니&라이프]평범한 주부에서 성공한 사업가로[3]
추천 1 | 조회 6198 | 번호 350 | 2006.11.01 14:13 금융플라자 (financemas***)
평범한 주부에서 성공한 사업가로
시아버지 사랑은 며느리에게, 시어머니 심술은 하늘에서 타고난다는 옛말이 있다. (주)억만장자의 박순옥(49) 사장은 시어머니의 매운 시집살이 때문에 평범한 주부에서 성공한 여성 사업가가 됐다. 박 사장이 철없는 새댁에서 여성 사업가가 되기까지는 수많은 아픔과 고통이 있었다.

7남매 중 맏딸로 태어난 박 씨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언제나 대장 이었다. “학창시절 별명이 ‘왕초’였습니다. 불량 청소년도 내 앞에서는 벌벌 떨었지요.” 그녀를 똑 부러진 성격에 남자 못지않은 힘까지 있어 남자들도 함부로 대하지 못했다. 그런 박 씨를 일찍부터 눈여겨본 사람이 있었다.

양평 최고의 갑부인 그의 시아버지였다. 아들의 신붓감으로 박 씨를 일찍부터 찍은 것이다. “어느 날 친구 집에 놀러가서 시아버지를 봤습니다. 대뜸 나이를 묻더니 며느리 삼고 싶다고 하더군요.” 농반 진반 오가던 말이 현실이 돼버렸다.

박 씨가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양가 부모님들이 일을 치른 것이다. “어느 날 외출하고 집에 돌아와 보니깐 내 물건이 없어졌습니다. 오빠한테 물어보니 시아버지가 짐을 싸 가지고 갔다고 하더군요.” 시아버지가 세상물정 모르고 곱게만 자란 아들에게 딱 맞는 신붓감을 놓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이때부터 박 씨의 고생은 시작됐다. 유난히 아들을 사랑하는 시어머니 눈에 며느리가 예뻐 보일 리 없었다. “99칸 집에서 살았는데 말이 좋아 부잣집 맏며느리지 종보다 나은 게 없었습니다. 당시 양평 사람들이 다 알 정도로 혹독한 시집살이를 했습니다.”

일찍 장가든 것이 부끄러웠던 남편은 장가든 것을 속이고 다녔고 고추보다 매운 시어머니의 시집살이는 계속됐다. 시아버지만 유일하게 박 씨 편이었다. “혼자 있으면 아버님이 오셔서 드라이브 가자며 자전거를 끌고 오셨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양평시내를 돌다 보면 어느새 근심도 사라졌지요.”

평생 법 없이도 살 수 있을 것만 같던 이런 시아버지에게 큰 일이 닥쳤다. 빚보증을 섰는데 잘못돼 집과 논밭을 날린 것이다. 이후 박 씨는 고향을 등지고 무작정 서울로 올라왔다. 부유하게 자란 남편은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했고 시어머니는 매일 며느리에게 화풀이를 했다.

“그때 일은 정말 생각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동대문시장에서 의류장사를 했는데 고된 일에 시달려 젓이 퉁퉁 부어오르면 그걸 짜 버리고 다시 아침에 일하러 나가곤 했습니다.” 고된 삶에 지쳐가던 박 씨에게 뜻밖의 기회가 다가왔다.

82년 교복 자율화가 시작된 것이다. 사라지는 교복을 대체하는 새로운 옷이 필요했는데 박 씨는 청바지에서 그 해답을 찾았다. 미리 재고 물량을 확보해서 질 좋은 청바지를 시중가보다 싸게 공급하니 불티나게 팔렸다.

악바리처럼 열심히 일하는 박 씨를 보고 방황하던 남편도 마음을 잡았다. 고생이 끝나는가 싶더니 또 다른 어려움이 닥쳤다. 큰아들이 감기증세를 보여 병원에 갔더니 백혈병에 걸렸다는 것이었다. 생명을 연장시키기 위해 병원 치료를 받았는데 치료비로만 당시 돈으로 1억원이 들었다.

병원비를 마련하기 위해 공장과 집을 팔았다. 그러나 백혈병 선고를 받은 지 13개월 만에 큰아들은 세상을 떠났다. 아들을 떠나보낸 빈자리는 너무나 컸다.“시어머니는 식음을 전폐하고 며칠 동안 눈물만 흘렸습니다. 시어머니의 기력을 회복시켜 주기 위해 만둣국을 끓였더니‘이걸 만둣국이라고 만들었느냐’고 핀잔을 하더군요. 그러더니 시어머니가 만두 만드는 방법을 가르쳐 줬습니다.”

박 씨는 이때부터 만두 장사를 시작했다. 좋은 재료로 만들어 부잣집 부인들을 상대로 팔았다. “당시 부잣집 부인들이 모이는 장소가 있어 그 곳에서 만두를 팔았더니 반응이 좋더군요.”입소문이 퍼지자 주문이 밀려 들어왔고 어엿한 가게도 차릴 수 있었다.

그러나 또 살 만하니 시련이 닥쳤다. 남편이 보증을 잘못서 가계와 집을 또 팔게 됐다. 게다가 시어머니는 폐암에 걸렸다. “시어머니 건강을 위해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다시 양평으로 내려갔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만두집을 차렸습니다.”

음식솜씨가 좋은 덕에 가게는 항상 문전성시를 이뤘다. “식당에 놀러온 손님들이 술을 찾아 집에서 대대로 내려오는 전통주를 한두 잔 내놨는데 술맛이 좋다고 그러더군요. 처음에는 서비스로 시작했는데 돈을 줄 테니 술을 팔라고 했습니다.”

97년 박 씨는 내친 김에 만두장사를 접고 전통주 장사를 시작했다. 처음엔 장사로 시작했지만 이젠 어엿한 사업이 돼 버렸다. 끊임없는 연구를 통해 몸에 좋은 발효주와 전통주를 개발했으며 주류업계 최초로 2001년 벤처 인증까지 받았다.

2000년 12월 1단계(291평) 공장이 완공됐으며 2001년에는 2차 공장까지 완공했다. 작년부터 본격적인 시판에 들어간 ‘천주’는 6개월간 10억원 어치나 팔려 나갔다. 얼마 전 중국과 수출 계약을 체결한 박씨는 올해는 30억원의 매출을 예상하고 있다.

기능성 전통발효주의 효과가 입증돼 주문이 지속적으로 늘고 있기 때문이다. 박씨는 요즘 새로운 프로젝트를 계획하고 있다. 잊혀 가는 전통을 살리기 위해 2,000평 대지에 민속마을을 설립하고 있는 중이다.“산업화가 되면서 우리 고유의 전통이 사라지고 있죠. 전통을 이어가는 민속마을을 설립해 우리의 문화를 되찾을 예정입니다.”




본 글은 나의 금융생활 네트워크 Daum 금융플라자(http://home.finance.daum.net/)에서 제공하며, 당사의 허락 없는 무단 전제를 금합니다
1
0
신고


푸터

카카오가 제공하는 증권정보는 단순히 정보의 제공을 목적으로 하고 있으며, 사이트에서 제공되는 정보는 오류 및 지연이 발생될 수 있습니다.
제공된 정보이용에 따르는 책임은 이용자 본인에게 있으며, 카카오는 이용자의 투자결과에 따른 법적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Copyright (c) Kakao Corp. All rights reserved.
위 내용에 대한 저작권 및 법적 책임은 자료제공사 또는 글쓴이에 있으며 카카오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