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년간 사업을 하다 보니 ‘인사가 만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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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 매출 50억원을 올리고 있는 (주)솔베이 장재철 사장. 지금은 탄탄한 중소기업으로 성장했지만 믿었던 사람에게 사기를 당해 벼랑 끝에 몰리는 등 사람 때문에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그래서 장 사장이 내린 결론은‘인사가 만사’라는 것. 전통적인 유교집안에서 태어난 장씨는 4살 때부터 할아버지로부터 유교와 한문교육을 받았다. 엄격하던 할아버지는 아침 6시부터 시작하는 천자문 익히기와 동문선습 공부를 하루도 거르지 않았다. “어린 시절 혹독했던 유교 교육이 어려움을 견뎌 낼 수 있는 밑거름이 된 것 같습니다.” 안성 근교 시골에서 태어난 장씨는 아버지가 직장을 옮기면서 도시생활을 시작했다. 장씨의 아버지는 당시 수출입 통관관리를 하고 있었다. 아버지의 일터를 자주 찾던 그에게 커다란 컨테이너를 잔뜩 실은 큰 배에서 인부를 관리하던 아버지의 모습은 너무나 멋졌다. ‘장 성실’로 불릴 만큼 열심히 일해 이때부터 그는 세계적인 국제무역 전문가가 되고 싶다는 꿈을 키웠고, 1979년 무역학과에 진학했다. 인생의 진로를 국제무역 전문가로 정한 장씨는 어학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꿈을 실현하는 데 필수요소인 영어를 습득하기 위해 꼭두새벽부터 밤 1시까지 공부했다. “영어를 습득하기 위해 밥을 먹거나 길을 걸을 때에도 미친 사람처럼 공부를 했죠. 덕분에 지금은 외국인과 원활하게 의사소통을 할 수 있습니다.” 장씨의 첫 직장은 하이트 맥주. 무역부문에 지원해 발령을 받았지만 막상 주어진 일은 마케팅 판매기획업무였다. “기껏 하는 일이 텔렉스 전문을 발송하고 접수하는 거였습니다. 동료들조차‘영어실력이 아깝다. 왜 여기 왔느냐’고 의문을 나타내더군요.” 오랫동안 키워온 꿈과 희망을 버릴 수 없었던 장씨는 1년여 만에 회사를 그만두고 해외영업분야의 일을 찾아 나섰다. 안정된 생활에 익숙해지면 열정이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생긴 때문이다. 1987년 캠핑용품을 생산하는 쟈칼텐트 해외영업부에서 무역 업무를 시작했다. 장씨는 캠핑용품 전문가가 되기 위해 최선을 다했고, 무역 거래의 중요한 기술을 배워 나갔다. 무역의 시작인 자기소개서 작성방법부터 생산 및 품질관리, 클레임 대처 방안, 지속적인 관계유지를 위한 신뢰 쌓기, 심지어 접대 방식까지 배울 수 있었다. 당시 그는 주위에서‘장 성실’이라고 불릴 만큼 성실하게 일을 했고, 해외영업과장으로서 영업실적도 가장 뛰어났다. 그러나 그는 시간이 지나면서 회사 생활에 점점 회의를 갖게 됐다. 회사가 영업에만 몰두하고 제품 품질향상에 대해서는 별다른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제품의 품질에 대해 회의가 생기더군요. 품질향상에 투자하지 않는 회사는 가망이 없다는 판단이 들어 퇴사를 결심했습니다.” 장씨는 1991년 여의도에 9평의 사무실을 열고‘가문’이라는 상호의 무역업을 시작했다. 무일푼으로 시작한 일이라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장씨가 직접 해외 박람회를 돌아다니며 수주전을 펼친 결과, 조금씩 회사가 성장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인건비 상승이 엄청난 국내 기업환경은 중국, 홍콩, 베트남 등의 초저가 가격과 경쟁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한국의 스포츠 용품 전반에 걸쳐 성장이 멈춰 버린 시기였기 때문이다. 희망이 없다고 고민하던 장씨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1994년 일본의 3대 기업 중 하나인 스미토모와의 거래가 열린 것이다. 그것은 전혀 뜻하지 않은 행운이었다. 브로커 농간에 투자금 날리고 자살까지 생각 그해 500만 달러의 수출계약을 땄다. 호사다마라던가. 다음 프로젝트로 1,000만 달러어치를 추진하면서 3차례의 선적이 완료된 상태에서 브로커인 일본 교포가 갑자기 새로운 조건을 요구하고 나섰다. 5%로 약속했던 중개 수수료를 10%로 올려 달라는 것이었다. 게다가 회사 지분을 공정하게 나누는 ‘공동회사로 하자’는 압력을 가해왔다. 장씨는 완강히 거부했다. 결국 인생의 전부를 걸었던 프로젝트는 브로커의 농간으로 막대한 투자금만 날리는 결과로 돌아왔다. “그 일 이후 모든 것을 포기하고, 술이 없으면 잠을 자지 못하는 고통의 나날이 계속되었습니다. 심지어 자살 결심까지 했습니다.”장씨는 그렇게 6개월여를 지옥에서 살았다. 다시 살아보겠다는 각오로 새로운 삶을 얻게 된 장씨는 캠핑 분야에서 차별화 상품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보다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는 텐트와 배낭을 연구했고, 오랫동안 연구해 오던‘원터치 이지파워텐트’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우산처럼 한 번에 펴고 접을 수 있는 텐트라는 컨셉트에서 시작한 아이디어는 96년 원리를 완성했으나 생산하기까지 또 많은 시행착오를 거쳤다. 수많은 실험과 현장 테스트를 되풀이 했다. 생각보다 제품을 만들기가 쉽지 않았다. 폴대 하나를 가지고 씨름하는 사이 해가 바뀌었다. 그런 노력 끝에 마침내 97년 제품을 완성시켰다. 결과는 대히트였다. 이제까지의 어떤 텐트보다 편하고 견고한 이 제품은 미국·유럽은 물론 일본에서 큰 호평을 받았다. 제품의 출시에 맞추어 이름도 ‘가문’에서 ‘솔베이’로 바꾸었다. 현재 솔베이는 4개의 국내 특허와 실용신안 15개 의장등록 5개, 세계특허 30여 개국 등록을 추친하고 있다. 지난 10여 년간 성실히 쌓은 경험과 노하우가 비로소 빛을 발하기 시작한 지금, 장씨는 솔베이의 기발한 제품들과 함께 세계를 누비는 꿈을 꾸며 신제품 개발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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