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연구소에서 인터뷰를 하자고 찾아왔다. 인사를 하며 자연스럽게 가족 얘기를 나눴다. 손님은 공무원을 하다 뜻한 바 있어, 잘 나가는 곳은 아니지만, 민간연구소로 자리를 옮겼다. 남편은 판사다.
‘판사?’ 정말 남부럽지 않은 직장이다. 그런데 손님은 노후걱정을 한다. 사실 판사 월급이 아주 많은 건 아니다. 변호사를 해야 돈을 많이 번다. 사법연수원 성적순으로 치자면 판사가 제일 좋지만, 비리를 저지르지 않는다면 판사도 그냥 공무원 월급을 받을 뿐이다. 그래서 이런 말이 있다.
‘검사는 친구들이 좋고, 변호사는 마누라가 좋고, 판사는 본인이 좋다.’
검사처럼 해결사(?) 노릇도 못 하고, 변호사처럼 큰돈 벌지는 못하지만, 누구 눈치도 안 보고 소신껏 일한다는 얘기다. 그렇다고는 해도 안정된 직업의 대한민국 고급 공무원 아닌가? 또 변호사로 변신하면 소득이 훨씬 많아지지 않는가? 그런데도 노후가 걱정된다니….
소방공무원을 상대로 강의할 때도 참석자 대부분은 노후가 불안하다고 했다. ‘허, 그렇다면 대한민국 문 닫아야 하지 않을까?’ 이삼십 년 전에 비하면 이렇게 잘 사는 나라가 됐고, 직장도 안정된 공무원의 노후가 불안하다면 말이 안 되는 거 아닌가. 그럼 그들이 생각하는 노후생활비는 대체 얼마나 되는 걸까?
귀농도 은퇴설계의 한 방법
서울시에서 지원하는 귀농학교에서 재무강의를 한 적이 있다. 재무도 재무지만, 내가 18년째 농촌에 살고 있다는 점을 감안해서 강의를 요청한 것이었다. 나는 귀농이야말로 가장 훌륭한 생애설계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한다. 소득이 적어졌을 때 돈을 적게 들이는 생활방법이라는 점도 있지만, 그 이상으로 우리의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한다는 점을 높이 평가해야 한다.
나는 그날 오전에 내가 키우는 오골계가 품었던 알에서 두 마리 병아리가 탄생한 것을 봤다. 그리고 달걀 한 꾸러미를 챙겨가서 강의 도중 문제 경품으로 줬다. 내가 이렇게 한 것은 돈 말고도 우리 인생을 즐겁게 해주는 요소는 참 많고 쉽게 실천할 수 있는 것이라는 걸 암시하기 위해서였다.
“은퇴 후 부부 생활비를 얼마로 생각하십니까?”
앞 자리에 앉은 세 사람 모두 300만원이라고 대답했다.
“자녀교육비, 보험료, 대출원리금, 이런 거 다 빼고요.”
표정을 보니 ‘그럼 더 적어도 되겠군.’ 하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사실 재무상담을 하다 보면 노후생활비를 많이 생각하는 편이다. 그러니 불안하다. 금융회사나 언론이 부추기는 감도 없지 않다.
“우리 동네 할머니들 한달에 30만원도 안 쓸 걸요.”
강남에 있는 재무설계 회사 사람이 이런 얘기를 하면 아마 세상 물정 모르는 놈이라는 손가락질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그날 자리는 귀농을 준비하는 사람들 모임이어서 그런 분위기는 아닌 듯했다.
노후불안의 최대 주범은 혹시 금융자본의 협박(?)
안 사주던 아이스크림을 사주고, 방학 때 하려는 특별활동비도 토 달지 않고 대주겠다고하니 막내는 의아해했다. 대학생인 둘째 생일날, 특별히 해줄 게 없어 5만원으로 생일선물을 대신했더니 아들은 사양하다가 뜻밖이라는 듯 받았다. 그리고 며칠 후 둘째와 셋째랑 맥주를 마시며 얘기를 나눴다. 그러다 문득 아들이 내게 이렇게 말했다.
“아빠, 노후가 걱정돼?”
‘엥, 갑자기 이 녀석들이 왜 내 노후 얘기를?’
아들은 내게 개그를 한 것이다. 아빠가 전과 달리 자기들에게 관대해진 것이 좀 이상한데, 혹시 자식들에게 잘 보여 늙었을 때 용돈 많이 받으려고 하는 거 아니냐는….
아무튼 세상이 온통 노후걱정이다. 그러나 나는 이런 세태가 문제라고 생각하고, 어떤 측면에서 이런 협박(?)전략은 금융자본이 평범한 세상사람들에게 자신들의 금융상품을 파는 한 방편이라고 본다. 모든 경우에 이런 해석이 다 적용될 수는 없을 것이고, 지나친 해석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될 수도 있다. 또 그런 협박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완벽한 대안을 제시하는 것도 쉽지 않다.
내가 어릴 때인 70년대에 비하면 지금 우리 사회는 엄청나게 풍족한 사회다. 부익부빈익빈, 가족을 포함한 공동체성의 상실, 상대적 박탈감 등 정신적인 요소들, 세계화에 따른 더 급격한 변화와 치열한 경쟁, 늘어난 수명 등 달라진 요소는 무수히 많다는 점을 인정한다. 그렇다고는 해도 불안한 노후를 자산을 늘려 해결하려는 건 일부 능력 있는 사람들에게만 가능한 해법일 뿐이며, 그것도 결코 완벽한 해법은 되지 못한다.
부족하다는 전제 아래에서는 만족스런 해법을 찾을 수 없다. 정말 부족할까? 그리고 그 누가 부족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까? 이건 꼭 심리학을 거론하자는 게 아니다. 상식 수준에서 말하자는 것이다. 생애 재무설계에서 돈 문제를 따지는 핵심은 돈의 양을 늘리는 게 아니다. 노후 문제 역시 예외는 아니다.
이렇게 말하는 나 역시 돈의 양 문제로부터 결코 자유로운 사람은 아니다. 다른 조건이 똑같다면 국민연금 예상수령액이 지금보다 훨씬 더 많으면 좋을 것이고, 개인연금도 충분히 가입해 놓았으면 좋은 것이다. 이건 누구나 마찬가지다. 또 국가나 사회가 개인을 훨씬 더 배려해 주는 조건이라면 덜 불안할 것이다. 독일이나 스웨덴 같은 나라처럼 말이다.
사회적 요소가 더 중요한 면이 있지만, 여기서는 개인이 더 많이 통제할 수 있는 개인 요소를 따져보는 자리다. 다른 사람 얘기할 것 없이 내 얘기를 하자면, 나는 최소한 금융자본의 협박(?)에는 덜 노출된 편이고, 내 나름의 노후 해법을 하나씩 찾아나가고 있는 편이다. 그 중 하나가 일찍 귀농(귀촌)한 것이다. 살고 있는 집은 24평인데, 서울에서라면 말도 안 되고 헐값에 구한 집이다. 오늘 오후에는 비가 덜 오는 시간 내내 열평 남진한 텃밭에서 풀을 매고, 콩을 수확하고, 그러면서 지렁이를 잡아 닭들에게 맛있게 먹였다.
쉬운 얘기는 아니란 걸 안다. 그리고 꼭 귀농해야만 가능한 것도 아니다. 도시에서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비슷한 길을 찾아나갈 수 있다. 다만, 다른 사람들이 하는 것처럼 비슷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더 많이 벌어서 노후를 해결하려는 관점을 바꿔, 자신의 처지와 지향에 맞게 크게 바꿔 보려는 태도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나눠보려는 것이다.
포도재무설계 /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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