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이들 입장에서 보면 깐깐한 아빠다. 작은 문제라도 결코 쉽게 넘어가지 않는다. 그렇지만 권위로 밀어붙이지지는 않는다. 얼마 전 둘째가 말한 걸 봐서도 짐작할 수 있다.
“윗사람이 권위적이지 않아서 그 부서 사람들은 좋겠어.”
실제 우리 부서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는지는 별개고, 우리 아이들은 나의 권위 때문에 힘들지는 않았다는 건 분명한 것 같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은 내가 달라졌다며 의아해한다. 농담 삼아, 좀 이상해진 거 아니냐는 식으로까지 말한다. 내가 나이가 들고 세상살이가 힘들어서 변한 걸까? 아니면 녀석들이 철이 들어 내 태도가 변한 걸까?
안 사주던 아이스크림을 사주다
“아빠, 아이스크림 사줘라.”
단둘이 처갓집에 내려가다 쉰 휴게소에서 고3인 막내딸은 내 팔을 끌며 애교를 떤다.
“그래.”
막내는 표정이 밝아져 가게 안으로 들어간다. 뭘 살지 한참 고민하더니 4,500원짜리 아이스크림을 사겠다고 한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는데 막내는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그러면서 선뜻 주문을 하지 못한다. 내가 4,500원이나 하는 아이스크림을 사주겠다고 한 것도 뜻밖이고, 그렇게 비싼 걸 사야 하나 하는 자기검열도 하는 것 같다.
밤 늦게 도착한 처갓집에서 막내는 먼저 와있던 언니와 엄마한테 이렇게 말했다.
“아빠가 4,500원이나 하는 아이스크림 사줬어.”
나는 아이들이 어릴 때 군것질을 거의 사주지 않았다. 군것질을 사먹지 않는 건 어릴 적부터 내게 몸에 밴 습관이었다. 군것질 할 돈도 없었거니와 어머니로부터 훈련받은 것이기도 했다. 게다가 나는 30대 중반에 유기농산물을 취급하는 생활협동조합 운동을 한 적도 있다. 그 이후로 내게는 시중에 나도는 많은 음식들이 몸에 좋지 않다는 신념이 생겼다. 그러니 더욱 더 아이들에게 군것질을 사주지 않았던 것이다.
내가 특히 더 신경을 썼던 건 콜라나 사이다 같은 청량음료, 아이스크림이나 빵, 후라이드 치킨 같은 것들이다. 그래서 먹는 거 갖고 늘 다툼이 많았다. 녀석들은 ‘아빠는 우리들한테 돈을 안 써.’ 하는 생각도 많이 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전혀 안 먹은 건 아니다. 그럴 때마다 아내는 양보했다. 아내는 음식에 대해 나만큼 투철하지 않은 면도 있고, 아이들에게 너무 세게 강요하는 것도 좋지 않다는 생각을 하는 편이기 때문이다. 그랬던 아빠가. 그것도 일이천 원이 아닌, 4,500원이나 하는 아이스크림을 선뜻 사주다니! 막내에게는 정말 놀랄만한 일이었을 것이다.
요구하는 걸 토 달지 않고 다 들어주다
“아빠, 내가 3년 동안 지오노모리 학교랑 교류 계속 했거든.”
막내가 돈 얘기를 하려고 전화를 한다. 그래서 이번 여름방학 때도 참여하려고 하는데 비용이 25만원 정도 든다는 것이다. 순간 ‘아 또 돈 얘기.’ 하는 언짢은 맘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곧바로 ‘그래, 올해가 마지막이구나.’ 하는 마음도 들었다. 자신의 처지를 설명하는 차분한 말투도 이런 마음이 들게 하는 데 한몫 했다. 녀석은 돈 얘기 할 때는 다른 때보다 말투가 훨씬 차분해진다. 상대를 설득하기 위한 좋은 습관이다.
“응, 그래.”
수화기 너머에서 고맙다는 인사가 전해온다. 그런데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근데, 아빠. 금요일에 광고학원 다니는 거….”
학원비 18만원, 그리고 하나 더 추가. 나는 흥겹게 대답하지는 않았지만 다 승낙했다. 그런데 전화를 하는 막내는 꽤 뜻밖이라고 생각하는 거 같았다.
내가 어릴 적 부모님은 가난했고 근검절약했다. 나 역시 그런 생활이 몸에 뱄다. 넉넉하면서도 근검절약할 수 있다. 그건 정말 훌륭한 사람이다. 반대로 가난하면서 근검절약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이건 정말 불행한 일이다. 우리 주변에는 이런 일이 참 많다. 그렇다고 그런 사람들이 나쁘다거나 어리석다고만 할 것은 아니다. 거대한 세상의 흐름 속에서 스스로 잘 헤쳐 나간다는 건 참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다행히 나는 어려서부터 나 스스로를 잘 통제하는 버릇을 들였고, 대학 이후로는 세상을 바꾼다는 큰 뜻을 품었기에 개인 소비생활로 갈등을 느끼는 일은 드물었다. 그런 내가 재무설계 일을 하면서부터는 돈 문제에 대해 더 투철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돈을 많이 벌고 적게 버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돈에 끌려다니지 않고 주도하는 삶을 사는 거라는. 그러니 아이들이 돈 쓰는 얘기를 하면, 흔한 말로 깐깐한 응대를 했던 것이다.
그랬던 아빠가 몇 십만 원이 드는 얘기 몇 가지를 아무 토 달지 않고 승낙했으니 막내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포도재무설계 이광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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