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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칼럼

우산 잃어버리기 딱 좋은 날
추천 0 | 조회 517 | 번호 2402 | 2013.06.18 13:10 이광구 (nario***)

‘이슬비 내리는 이른 아침에 우산 셋이 나란히 걸어갑니다.’

애들 셋이 다정하게 걸어가는 모습을 ‘우산 셋이 나란히’라고 표현했다.

‘빨간 우산 노란 우산 찢어진 우산….’

왜 파란 우산이 아니고 찢어진 우산일까?

 

그때 우리는 찢어진 우산도 많이 쓰고 다녔다. 대나무와 비닐로 만든 우산을 더 많이 썼는데, 살대가 부러지거나 고장난 것도 많았다. 참 부끄러운 일이었다. 부끄러운 건 둘째 치고 그나마도 없을 때도 많았다. 그럴 때의 낭패감이란….

 

그런데 동요는 이렇게 이어지고 있다.

‘좁다란 학교길을 우산 세 개가

이마를 마주대고 걸어갑니다.’

 

빨간 노란 울긋불긋한 우산과 찢어진 우산이 다정하게 이마를 마주대고 걸어가는 것이다. ‘좁다란’이란 표현도 의미가 있다. ‘넓디넓은 학교길’이라고 하면 이마를 마주댈 일도 없을 것이고 의미도 없을 것이다.

 

작가가 일부러 그런 상황을 꾸민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실제 있는 모습 그대로를 말한 것일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건, 그 있는 그대로에서 작가는 이런 점을 읽은 것이다. 찢어진 우산과 이마를 마주하고 다정하게 지내는 모습.

 

빨간 우산, 노란 우산, 찢어진 우산

- 마음만은 찢어지지 않기를

 

대학교 4학년인 선배의 딸은 우산을 잃어버리기 일쑤다. 다 큰 자식이고 늘 자신의 일을 당당하게 챙기는 딸이기에 웬만한 일은 간섭하지 않지만, 너무 자주 그런다 싶어 한번은 좀 나무랬다. 알고 보니 딸은 잃어버리는 것도 아니고, 잊어버리는 것도 아니었다. 알고도 그렇게 한다는 것이다. 딸이 우산을 가져오지 않는 건 아침에 비가 오고 오후에 비가 오지 않는 날이다. 그럴 때는 까페나 도서관 같은 데 그냥 두고 온다는 것이다.

 

“아니 그걸 왜 그냥 두고 오냐?”

귀한 우산에 대한 기억만으로 가득한 선배는 딸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았다. 그러나 딸의 대답은 뜻밖이었다.

“아니 아빠, 5천원 때문에 내 패션을 구긴단 말이야!”

 

꼭 생활에 절실하게 필요하지 않은데도 비싼 돈 들여 머리를 손질하고 멋진 핸드백이나 구두를 사지 않느냐, 그런데 비도 안 오는데 만 원도 안 되는 돈 아끼려고 우산을 들고 다닌다는 건 말이 안 된다는 논리다. 아빠는 우산에 얽힌 어릴 적 추억도 있지만, 알뜰한 살림을 주장하는 재무전문가다. 그렇지만 딸의 경제논리 역시 만만하지 않다.

 

그런 아빠한테 딸은 이런 이유도 덧붙였다.

“거기 놔두면 나중에 필요한 사람이 쓸 거 아냐.”

늘 돈은 열심히 벌고 아껴 써서 보람되게 써야 한다고 주장하는 아빠, 이 대목에서 KO펀치를 맞은 것이다.

 

내게는 패션, 남에게는 쓸만한 우산

 

오랫동안 차로 출퇴근하던 내게 우산은 꼭 필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요즘 우산은 여기저기에 많다. 아까운 생각에 조금 망가진 우산을 고쳐 써보려고 하지만 실제 그런 적은 없다. 괜히 자리만 차지하고 마음에 숙제만 남길 뿐이다. 그렇지만 전철로 출퇴근 하는 요즘은 회사와 숙소에 우산 하나씩을 마련해 둬야 한다. 30대까지만 해도 우산이 없으면 조금 맞으면서 뛰었지만 이제는 그럴 분위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며칠 전 우즈베키스탄과 축구하던 날(그러고 보니 오늘도 축구를 하네), 약속 장소에 쓰고 간 우산은 우산 대 하나가 망가진 우산이었다. 망가졌다고는 해도 2~3초면 고쳐지는 정도다. 살대의 지지대가 끊어진 건데, 원래 자리에 갖다 살짝 맞춰놓으면 아무 문제가 없다.

 

약속이 끝날 즈음 비는 그쳤다. 결국 우산을 술집에 두고 왔다. 다음날 나는 출근하며 생각했다.

‘그 우산은 아마 쓰레기로 버려질 거야.’

나 같으면 쓸 때마다 2~3초 투자해서 쓰겠지만, 다른 사람은 한번 쑥 펴보고 살대 하나가 망가진 걸 확인하고는 쓰레기로 버릴 것이다. 우산은 쓰레기로 버리는 것도 번거롭다. 짜증이나 나지 않을지 모를 일이다. 남이 나처럼 그 우산을 이용해 주기를 바라는 건 현실을 모르는 철없는 생각이겠지?

 

선배의 딸은 남에게 쓸 만한 우산을 남겨주건만, 나는 쓰레기만 남겨준다. 쓸쓸한 오후다.

 

포도재무설계 이광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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