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투자자보호재단 박병우 사무국장
2005년 12월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이 발효되면서 도입된 퇴직연금제도가 어언 6여년이 지났다. 그 이전에는 유사한 형태의 '퇴직금제도'가 있었지만, 일부 대기업이나 금융기관 등을 제외한 대부분의 기업들이 퇴직금을 장부상으로만 적립해두는 경우가 많아서 회사가 망하면 받지 못하는 사례가 자주 발생하였다. 한편, 근로자는 퇴직금을 자신의 노후소득으로 활용하기 보다는 빚을 갚거나 주택을 매입하는 등의 용도로 지출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급속도로 노령화가 진행되고 조기퇴직이 확산되는 한편, 국민연금의 지급액은 축소되고 그 수령시기 마저 미루어지고 있는 등 사회경제적 환경이 크게 변하고 있다. 이런 변화에 대응하여 정부는 퇴직연금제도의 조기 정착을 추진하고 있으며, 그 일환으로 2012년 7월부터는 기존의 퇴직금을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중간정산을 금지하고 세제 혜택을 강화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였다.
퇴직연금제도는 크게 확정급여(DB1))형과 확정기여(DC2))형 등 두 가지 유형이 있다. DB형은 근로자에게 지급할 적립금의 운용을 회사가 책임지며, 근로자는 퇴사시 회사와 미리 약속한 금액을 지급받게 된다는 점에서 기존의 퇴직금제도와 유사하다. 다만, 적립금을 회사 밖에 적립하도록 강제화함으로써 회사의 존망과 무관하게 근로자는 퇴직시 미리 약속한 퇴직연금을 받을 수 있게 된 점이 달라진 점이다. 이에 반해 DC형은 완전히 새로운 제도이다. DC형은 근로자 개개인이 받을 퇴직금을 미리 정하는 것이 아니라 사용자가 근로자의 퇴직소득 마련을 위해 지급해야할 부담금을 미리 정하여 이를 근무기간 중에 지급하고 근로자는 그 적립된 자금을 자신의 의향대로 투자ㆍ운용하며, 퇴직 시 그 운용성과를 퇴직금으로 가져가는 것이다. 즉, 사용자는 연간 임금 총액의 12분에 1 이상의 금액을 퇴직연금규약에 의하여 선정한 자산관리기관(금융기관)에 근로자 개인별 계좌에 적립한다. 또한, 근로자는 퇴직연금규약에 의하여 선정한 운용관리기관(금융기관)이 제시하는 운용방법(금융상품)을 선택하여 적립금을 운용(투자)한다. 이처럼 적립금은 회사로부터 완전히 독립되어 근로자 개인의 명의로 투자ㆍ관리되므로 회사가 망하더라도 자신의 퇴직연금자산은 지킬 수 있다. 그러나, DB형과 달리 DC형은 근로자가 직접 적립금을 운용하므로 운용결과에 따라 퇴직연금의 규모가 달라진다.
새로운 퇴직연금제도의 핵심은 기존의 퇴직금 제도의 단점을 보완하여 회사 밖에 퇴직금 적립을 의무화한 DB형이라기 보다 개인에게 적립금의 운용책임을 부여한 DC형이라 할 수 있다. 미국 등 선진국에서도 1990년대 중반을 지나면서 DC형의 퇴직연금의 비중이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으며, 여타 선진국들도 DC형으로 유도하는 정책을 펼치는 경향이 확산되고 있다. 일례로 미국의 부시행정부 시절에는 공적연금의 자산 일부를 미리 수급권자인 국민들에게 할당하고 그 운용의 책임을 개인들에게 전가하려고 시도한 적이 있었다. 유럽에서는 1980년대 후반부터 “연금폭탄(pension bomb)"이란 용어가 유행할 정도로 연금제도의 개혁이 지속적으로 이슈화되고 있는데, 그 주제는 연금액의 삭감 및 DB형의 축소 또는 DC형으로의 이전이었다.
그러면 왜 DC형이 각광을 받는 것일까? 오랜 기간 운영되어 온 선진국의 DB형 연금제도가 한계에 봉착한 것은 사회경제적 변화현상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친 점은 저성장 구조와 노령화 추세이다. 경제성장률이 저하되면서 기업의 성장세는 더뎌지고 그에 따라 연금자산의 운용 성과는 저하되는 한편, 노령화 진행으로 연금수급자의 수는 증가하였다. 그 결과 연금 수입은 줄고 지출은 많아지는 등 연금자산의 현금흐름이 곤경에 처하는 상황이 빈발하면서 DB형 연금제도의 운영이 한계상황에 처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배경에서 연금자산의 운용책임을 연금 수급자에게 맡길 수 있는 대안으로서 DC형이 부상한 것이다. 그 밖에도 IT 산업의 발달, 종신고용구조의 퇴조, 연봉제 확산, 그리고 이직률의 증가 현상3) 등도 DC형 제도의 확산에 일조하고 있다.
이상에서 본 것처럼 DC형 퇴직연금제도의 특징은 근로자 자신의 책임 하에 적립금을 운용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개개인의 운용역량이 매우 중요하다. 만일 위험한 투자대상에 집중투자를 하였다가 손실을 보게 되면 그 당사자의 노후생활은 상당히 어려운 처지에 빠질 우려가 있다. 이런 점을 고려하여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에서는 사용자가 매년 1회 이상 퇴직연금 가입자(근로자)에 대한 교육을 의무화하고 있다. 그 교육이란 개개인의 적립금을 운용하는데 필요한 금융역량을 제고하고, 노후설계 등을 효율적으로 수립하고 실행하는데 필요한 방법과 정보를 제공하는 등의 포괄적인 투자자교육을 의미한다.
그런데, 가입자 교육의 실상을 보면 거의 대부분 인터넷을 통하여 형식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그것마저도 금융상품을 제공하는 운용관리기관(금융기관)이 담당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는 형식적으로는 ‘가입자교육’이라 할 수 있을지 모르나 그 내용을 보면 해당 금융기관이 자사 금융상품을 마케팅하는 기회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많다. 최근 금융감독원의 퇴직연금 가입자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4)에 의하면, 가입자의 34.7%가 교육에 참가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나며, 교육내용에 대하여 ‘용어의 어려움’(46.8%), ‘노후 컨설팅 미흡’(38.3%) 등의 순으로 불만사항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가입자가 희망하는 교육내용으로는 ‘노후자산 관리방법’(44.8%), ‘적립금의 운용방법’(38.3%) 등의 순으로 수요가 높은 것으로 응답하였으며, 적립금 운용시 불편사항으로서 응답자의 37.0%가 ‘금융상품에 대한 이해부족’을 지적하였다. 이러한 사실들을 보면 DC형 퇴직연금제도의 성공적인 운영에 기초가 되는 가입자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이러한 상황이 계속된다면 적립금 운용의 책임을 자금운용의 비전문가인 가입자 개인에게 전가하려는 의도만 달성된 채, 적립금 운용 실패로 근로자 개인의 노후준비가 미비한 결과를 초래하여 자칫 사회적 비용만 증가시킬 우려마저 있다. 특히, DC형은 개별 근로자가 노후자금 운용을 위하여 금융시장에 참여할 수 밖에 없는 제도임을 고려할 때, 자칫 금융기관에게 혜택을 주기 위해 근로자의 노후준비자산을 희생시키는 꼴이 될 수도 있다.
DC형 제도의 경우 가입자가 금융상품을 선택하지 않으면 금융기관이 ‘자동운용상품5)’에 투자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으며, ‘자동운용상품’은 대부분 수익률이 낮은 금융상품으로서 주로 원리금보장상품으로 지정되어 있다고 한다. 금융감독원의 조사6)에 의하면 2012년 6월말 현재 DC형의 경우 원리금 보장상품의 비중이 전체 적립금의 75.6%이며, 23.1%만이 펀드 등 실적배당형 상품에 투자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결과를 보면 근로자가 주도적으로 금융상품을 선택하여 투자함으로써 노후자금을 준비한다는 DC형 퇴직연금제도의 도입 취지가 무색한 것으로 보인다.
바야흐로 생업에 종사하는 대부분의 국민은 퇴직연금에 가입하는 시대가 되었다. 감독당국은 그간 제도 도입의 초기임을 감안하여 투자위험이 높은 금융상품에 대한 DC형 적립금의 투자를 제한하고 있었지만, 점차 주식형 펀드 등 다소 위험이 높으면서도 고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금융상품에 대한 투자를 허용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런 마당에 금융지식이 부족한 근로자들이 금융기관이 주도하는 마케팅성 교육에 의존하여 적립금을 운용한다면 위험한 상품에 과도하게 투자하는 등 바람직스럽지 않은 상황이 발생할 개연성이 있다.
DC제도가 성공하려면 근로자는 투자자교육을 통하여 적절한 수준의 금융역량을 갖추고 금융기관(운용관리기관)의 도움을 받아 자신의 책임 하에 적립금을 효율적으로 운용함으로써 자신의 노후자금을 마련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근로자는 자신의 적립금 운용을 위하여 금융상품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 뿐 아니라 금융기관의 올바른 활용방법, 그리고 미래에 대한 금전적인 계획을 수립하고 실천하는 등 필요한 지식을 갖추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한편, 감독당국도 DC형 퇴직연금제도의 바람직한 정착을 위해서 최우선적으로 가입자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도록 하여야 한다. 지금처럼 금융기관이 주도하지 않고 독립적이고 전문적인 공적 기관이 퇴직연금 가입자 대상 교육을 담당하여야 하며, 교육의 방법 및 내용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수립하여 내실있는 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는 조치가 취해져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을 경우, 개별 금융기관의 이익을 위하거나 자본시장의 발전에 개인의 금융자산을 활용하려 한다는 부정적 논란7)이 재연되거나, 아무런 보완책이나 지원 없이 노후생활에 대한 책임을 개별 근로자에게 전가하였다는 비난을 감독당국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1) Defined Benefit Plan
2) Defined Contribution Plan
3) DC형은 이직시 퇴직연금을 옮길 수 있는 이전성(移轉性)과 계속 이어갈 수 있는 통산성(通算性 )측면에서 효율적이며, 기업 입장에서는 퇴직전 미리 지급함으로써 관리가 용이하고 회계투명성이 제고되는 등의 장점이 있음
4) 퇴직연금 설문조사 결과 및 「가입자가 꼭 알아야 하는 10가지 유의사항」 발표(2012. 4. 20)
5) 미국의 경우 1990년 중반부터 DC형 기업연금제도에 대하여 가입자에게 제공하는 사례가 나타남. 그런데, 미국의 경우 회사가 근로자대표 및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독립적인 위원회가 자동운용상품의 지정을 주관하고 감독하나, 우리나라의 경우 운용관리기관인 금융기관이 하고 있어 그 상품이 근로자에게 유용한 것인지 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될 수 있음
6) ‘12. 6월말 퇴직연금 적립금 현황 분석결과(2012. 8. 20)
7) 퇴직연금의 도입 논의가 본격화하기 시작한 1990년대 후반 이후 도입될 때까지 노동조합이나 근로자 단체 등은 퇴직연금 자산을 활용하여 주식시장을 부양하고 금융기관의 이익을 제고하려 한다는 반대의견을 강하게 제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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