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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계부 이야기] A4 한 장에 꿈을 싣고(나의 가계부 진화기)[5]
추천 0 | 조회 10165 | 번호 2309 | 2011.10.24 11:10 에듀머니 (edu7***)

아래 내용은 이전 가계부 수기공모 때 예쁜바다님이 응모해주신 글입니다. 같이 공유하면 좋을 것 같아서 게시판에 올려드립니다. 좋은 글 써주신 예쁜바다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A4 한 장에 꿈을 싣고
- 나의 가계부 진화기

“우와, 우리 언니 눈이 저렇게 반짝이는 줄 예전엔 미처 몰랐네. 왜 몰랐을까? 형부! 형부는 알고 결혼한 거예요? 알고 결혼한 거면 대박 터진 거네”
오른쪽엔 계산기, 왼쪽엔 A4 한 장짜리 가계부를 옆에 펼쳐두고 열심히 돈 계산에 여념 없는 내 모습을 보고 동생이 옆에 와 놀리는 소리다.
피식 입가에 미소가 나온다.
‘하긴, 나도 내가 이렇게 돈 계산에 재능이 있을 줄 예전엔 미처 몰랐지’

1998년 5월, 결혼한 지 2달째부터 쓰기 시작했으니 이제 가계부를 쓰기 시작한 지 10년이 다 되간다.
결혼 전에도 몇 번 가계부를 쓰려는 시도를 하긴 했었다. 예산도 세워보고, 인터넷 프로그램도 활용해 보고, 해마다 연말이면 은행에서 주는 가계부도, 여성지에서 주는 가계부도 활용해 보았다.
그러나 새 가계부를 맞잡고 쓰야겠다 결심하고 달려들 때의 경건한 마음과는 달리 금방 가계부 쓰기는 중단되곤 하였다. 쓰다보면 빤한 돈에 빤한 예산에 이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은 회의가 스물스물 올라오는 판에, 무엇보다 주어진 틀에 맞추어 기록한다는 것이 뭔가 불편했고 자연 가계부 쓰기는 길어야 두어 달, 지속되지 않았다.

결혼 두 달째, 여기저기 인사 다닐 곳도 많고, 사야할 것도 많고, 왜 그렇게 돈이 많이 나가는지 정신이 없었다. 분명 은행에서 상당량의 현금을 찾은 것 같았는데, 불과 며칠 후면 은행인출기 앞에 가서 서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맞벌이긴 하지만 남편이나 나나 그닥 수입이 좋은 편은 아니었다. 위기감이 생겼다.

‘뭐야, 이러다가 파산하는 거 아냐.’
일단 돈이 어디로 빠지는지는 알아야겠는 생각으로 기록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록을 생각하니 가계부가 떠올랐는데, 결혼 전의 반복되는 실패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 난 가계부를 쓰는 게 아니야, 기록을 하는 거지.’
그래서 난 내 조건에 맞추기로 했다. 컴퓨터를 켜고 A4 한 장에 돈이 나가는 항목을 표로 만들었다.

남편용돈, 나 용돈, 식비, 살림꾸리, 빚(카드대금), 저금!
가계부에 무수히 나눠져 있는 주거비, 광열비, 의류비, 세금 등등 모두 귀찮았다. 그래서 몰빵으로 살림꾸리! 이렇게 항목을 나누니 근사한 느낌이 들었다.
가로로는 항목을 두고 세로로는 한 달치, 30개 칸으로 나눴다. 인쇄된 A4의 양쪽 여백을 자른 후, 2번을 접었다. 지갑에 쏙 들어가는 것이 그렇게 편했다. 이제 남은 것은 문구점에 들러 지갑에 들어갈 만한 아주 작은 사이즈의 볼펜을 사는 것이었다. 카드로 나가든 현금으로 나가든 내 지갑에서 지출이 있으면 볼펜과 A4종이를 꺼내들고 적었다. 그 즉시 적지 못할 경우는 집에 와서 저녁에 적었다.

한 달이 지나 표를 보니 비로소 내가 어디에 돈을 썼는지, 그 많은 돈이 다 어디로 갔는지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었다. 표의 가장 밑 칸에 빨간 볼펜으로 항목별로 합계를 내고, 총 지출이 얼마인지 계산을 했다. 단지 돈의 행방만 알 뿐인데, 뭔가 이뤄낸 것 같았다. 뿌듯했다. 클리어 파일에 그 달 가계부, A4 종이 한 장을 끼웠다.

그리고 곧장 컴퓨터 앞으로 가서 새로 한 달치 표를 만들어 A4로 다시 프린트 했다. 이번에는 비고란을 만들어서 그 날의 일을 간단히 기록했다. **와 약속, 집에서 택배 올라옴, **에 갔음 등 매일의 생활을 간단하게 메모를 했다. 음, 역시 결산 날은 뿌듯했다. 표 안에 나의 한 달 생활이 몽땅 들어있었다. 다시 클리어 파일에 끼웠다.

이번에는 새롭게 표를 만들고 싶었다.
‘그래, 이번엔 예산을 한 번 세워보자’
항목 옆에 ( ) 표시를 하고 식비(20), 남편용돈(30) 등 이렇게 금액을 기입했다. 그리고 밑에 메모칸을 만들어 예산에 따라 뭘 쓸 지를 기록했다. 남편 용돈, 어차피 한 번 주면 한 달은 그걸로 끝인데 통과! 내 용돈과 식비, 생활비는 항목을 그래도 꽤 세분화시킬 것이 있었다. 한 달인데 4주로 나눠 주당 식비는 얼마씩! 뭔가 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전문적인 냄새가 팍팍 나지 않는가?

매일 가계부를 기록하고 결산을 하고 클리어 파일에 철하고. 반복되는 과정이 차츰 재미가 났다. 그러나 마냥 즐겁지 만은 않았다. 기록하다 보니 봉급날이 지나면 2주 동안은 쓸 것이 있는데, 나머지 2주 동안은 정말 돈이 없어 쫄쫄거렸다. 뭔가 대책이 필요했다.
‘맞아, 주당 결산 항목을 만들어 보는 거야. 그러면 전체 예산에 비춰 얼마를 썼는지 알고 얼마가 남았는지 알 수 있잖아.’
표에 줄 4개를 추가시켰다. 7일이 끝날 때 마다 결산을 할 수 있게 8째 칸마다 음영을 넣어 다른 칸과 구별되게 하였다. 그리고 주 결산은 파란볼펜으로 하였다. 줄줄이 검은 색에 중간중간 파란색, 그리고 마지막 밑 부분은 빨간색! 가계부가 점차 화려해졌다. 음 이 맛이야. 결산일이 되면 계산기를 두드리며 책상 위에 펼친 A4종이를 보며 혼자 뿌듯해 했다.

그러다 집을 사게 되었다. IMF가 끝나기 전에 집을 사지 않으면 집 사기가 요원할 거라는 남편의 말에 우리 형편에 무슨! 이 남자가 왜 이렇게 간 큰 소리를 하나 싶었지만, 결국 대출을 이리저리 얻어서 햇볕도 하루 40여분밖에 안 들어오는 서향아파트이지만 26평 아파트 입주권을 마련하게 되었다.
대출금에 금리는 높은 데, IMF라고 월급은 계속 깍여 들어오지, 골치가 아팠다. 가계부를 쓰자니 이제는 즐거운 것이 아니라 지긋지긋했다. 겨울인데 난방비는 많이 나가지, 방학이라 남편 수입은 없지, 설은 다가오지, 갚아야 할 돈은 많지, 대출이자는 왜 그렇게 빨리 다가오는지 가계부를 쓰다 말고 울고 싶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가계부를 펼치면 뿌듯한 게 아니라 끔찍했다. 항목은 늘어갔고, 계산은 끝이 없었다.

수시로 A4 종이를 꺼내들고 가계부를 기록하는 행위가 내 상황을 더 극명하게 드러내 오히려 스트레스를 더 가중시키는 것 같았다. ‘이렇게 스트레스 받아가면서 매일 꺼내 기록하는 짓을 계속 해야 하나’ 돈 걱정이 많아지니 건강도 좋지 않아 가는데, 회의가 들었다. 쉬어볼까 싶었다. 가계부를 지갑에서 꺼내 다른 곳에 두었다. 하지만 매일 꺼내는 지갑에서 접힌 내 가계부 종이가 눈에 띄지 않자 뭔가 허전하고 초조해졌다. 일목요연하게 언제나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종이가 눈에서 띄지 않자 내 상황이 더 통제할 수 없는 먼 곳으로 가 버리는 것 같아 더 불안해졌다. 결국 안 쓰는 것 보다 쓰는 게 그래도 낫다는 생각으로 가계부를 다시 펼쳐 들었다
.
입주과정 중 유산을 하고, 또 한 번의 유산을 겪은 후 첫 아이를 얻으면서 나에겐 정말 예쁜 항목이 생겼다. 아이 칸이 생긴 것이다. 두 번의 유산 끝에 생긴 귀한 아기였기에 기저귀 얼마, 분유 얼마, 옹알이 장난감 얼마, 그 칸을 기록하는 것은 내게 큰 기쁨이었다. 여전히 대출은 남아있고, 부담감은 나를 짓누르고 있었지만 아이 칸을 결산할 때면 기뻤다.
“여보, 이번 달 우리 **앞으로 이만큼 썼어! 와! 쪼그만 놈이 많이도 썼네.” 결산을 할 때면 남편에게 큰 소리로 외치곤 했다. 가계부를 쓰는 것이 다시 내게 기쁨으로 돌아온 것이다.

그런데, 아이를 키우려고 직장을 잠시 쉬고 집에만 있다 보니 외출을 할 수가 없어 답답했다. 뭔가 돌파구가 필요했다. 인터넷에 접속하기 시작했다. 육아사이트도 가보고, 여기 기웃 저기 기웃 인터넷 쇼핑이라는 것도 해 보기 시작했다. 그러다 눈을 뜨게 된 것이 인터넷 뱅킹이었다. 은행가지 않고도 책상 앞에서 여러 가지 일을 할 수 있다니 정말 편했다. 이걸 어떻게 써먹을 수 없을까? 그 날도 가계부를 펴 들고 계산을 하다 ‘맞다 항목별로 통장을 나누면 되겠구나.’ 생각을 하게 했다. 가계부 기록과 통장에 찍힌 것을 대조하는 일은 한편으로는 즐거움이었지만 찬바람을 씌며 외출하다니 아이가 생긴 이후론 난감한 일이었다. 항목별로 통장을 나눴다. A4 종이를 펴고 컴퓨터를 켜면 모든 게 편했다.

인터넷 뱅킹을 통해 얻는 가장 큰 성과는 카드통장을 분리한 것이다. 카드통장을 따로 만들었다. 카드를 사용하면 생활비와 뒤섞여 다음 달에 뭉텅 통장서 빠져나가는 것이, 사람 기분이라는 게 쓸 때는 잘 써 놓고 지불할 때는 꼭 누가 내 돈 뭉텅이로 들고 가는 것 같아 아깝기 그지없었다. 가계부에 기록할 때는 ★표시를 하고 지출내역을 적었다. 그런 후 카드통장으로 돈을 이체하면 ★표시에 동그라미 표시를 추가하여 카드통장으로 돈이 빠졌음을 표시하였다.
카드의 가장 큰 단점이 현재 내 수중에서 돈이 나간다는 개념이 없는 것인데, 가계부에 ★ 표시를 하며 기록한 후 며칠단위로 돈을 이체시키니 수중에서는 현금을 쓰는 것과 똑같았다. 가계 지출상 현금을 쓰는 것과 같으면서 카드사의 무이자 할부나 포인트 혜택은 다 받을 수 있으니 인터넷 뱅킹의 최고 수확은 카드통장 분리였다.

카드사용을 표시하기 위해 별표시를 사용하다가 다양한 아이콘에 맛을 들여 차츰 가계부에 여러 형태의 아이콘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점만 찍은 것은 일상적인 지출표시, ◑는 자동이체, ▶는 과외 수입으로 지출한 항목 등. 그러다 보니 내 가계부가 무슨 암호지 같기도 했다.

다행히 남편 수입이 늘었고, 둘째도 순조롭게 태어났다. 입주한 지 3년, 대출 잔금이 천 만원쯤 남았을 때 남편과 나는 가계부를 펼쳐놓고 다시 머리를 맞잡고 의논하기 시작했다. 집을 한 번 산 경험으로 보아 정말 중요한 기간은 집을 산 순간이 아니라, 그 이후에 이어지는 대출을 갚아나가는 시간이었다. 아이 둘이면 집 면적을 한 번은 더 늘리는 게 필요할 것 같고, 아직은 남았지만 남편의 예상퇴직 시기를 고려하여, 대출금을 갚아나갈 시간을 고려하면 지금이 적기라고 결론을 지었다.

억대의 돈을 빌리고 새 집으로 이주했다. 계산을 할 때는 이전 누가 기록을 보고 했기 때문에 어느 정도 미래에 대한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우리가 몰랐던 것이 있었다. 우리의 계산은 수입이 그대로 변동이 없다는 것을 전제로 했을 경우에 한해서만 가능한 점이라는 것였다.

이주한 지 1년, 남편이 하던 프로젝트가 종료되었다. 프로젝트로 인해 줄어진 남편의 일들이 프로젝트가 끝난 후엔 지출감소로 되돌아오기 시작했다. 수입이 종잡을 수 없이 곤두박질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떨어진 수입과는 달리 우리의 지출내역과 돈 쓰는 습관은 굳건히 그대로였다. 줄어든 수입에 대처하자는 머리의 계산과는 달리, 돈을 지출하는 장면에서의 우리의 습관은 너무도 익숙한 패턴으로 진행되었다. 자연 가계부를 결산할 때면 한 달치씩 마이너스가 생기기 시작했다. 이 달 수입으로 전달 마이너스를 메꾸고 다시 이번 달은 마이너스에 의존해서 생활하는 시간들이 시작되었다. 여전히 가계부를 쓰고는 있지만, 가계부를 쓴다는 것 자체가 줄어든 수입에 대해 획기적인 지출감소로 기능하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생활비를 전체적으로 수입에 맞게 줄여야 하는데, 그것이 쉽지가 않았다. 자연 장이라도 보러 갈 때면 식구들과 팽팽한 긴장전이 벌어졌다. 이것저것 집어 드는 아이들을 말리느라 나는 정신이 없었고, 이것도 안 돼, 저것도 안 돼, 그러다가 그런 쫄아드는 내 모습에 지쳐 오히려 한 번씩 더 크게 지출해대는 내 모습을 남편은 측은 반, 짜증 반의 모습으로 바라보곤 했다.

겨우 수입규모에 근접하게 지출을 맞춰 가는데 1년 가까이 걸렸고, 그 기간의 차액은 고스란히 마이너스로 통장에 남아있었다. 주택관련 대출도 여전한데, 통장의 마이너스 금액은 시간이 갈수록 차곡차곡 늘어갔다. 당장의 마이너스도 문제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 마이너스가 더 늘어날 거라는, 그럼에도 회복될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가계부를 써 온 경험으로 보아 가장 무서운 것은 생활비의 증대였다. ‘조금만 더 하는’ 금액들이 항목마다 차곡차곡 모이면 그것은 엄청난 부메랑이 되어 항상 돌아왔었다. 아이들은 자라는데, 자라면서 ‘조금만 더’ 하는 항목들은 늘어갔다. 유치원친구들 다 다니는 피아노학원에 자기도 보내달라는 딸의 요구는 차마 거절할 수가 없었다.
수입은 더 늘어날 기미가 좀처럼 보이지 않고 다시금 이래저래 건강이 안 좋기 시작하였다. 가계부를 펼쳐들 때면 습관적으로 기록만 할 뿐, 손과 머리는 따로 놀았다. 머릿속은 어떻게 이걸 해결해야 하나 이래저래 돈 생각뿐이었다.

그 무렵 발견한 것이 ‘이제는 재무설계다’라는 한겨레 재무설계 캠페인이었다. 생활비 마이너스 부분 때문에 신경이 곤두서 있는 내게 재무설계 관련 기사들은 가슴에 쏙쏙 꽂히는 내용들이 너무도 많았다. 사례로 제시된 여러 사람들의 기사를 꼼꼼히 읽으면서 내 경우와 대입해 비교해 보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은 식비를 이 정도 쓰는구나, 생활비 항목은 이러저러한 것을 생각하는구나……. 노점상을 한다는 어느 분의 상담사례에서 마음이 움직여 나도 한번 도움을 받자 싶었다. 그래서 한겨레인터넷 신문을 통해 신청을 한 후 상담을 받게 되었다.

8년의 가계부 기록 경험이 있으면서, 나름 이 상황에서 이 정도 꾸려가는 것은 잘 하는 것이겠지 생각했던 나의 오만은 재무설계 과정을 거치면서 여지없이 깨져버렸다. 통화료 아낄려고 핸드폰도 선불폰을 쓰고 있었는데, 의외로 새는 구멍이 너무 많았던 것이다.

상담을 통한 일련의 재조정 과정을 거친 후 어느 날 나는 그 동안의 가계부를 좌악 펼쳐두고 진지하게 책상 앞에 앉았다. 나름 8년 동안 가계부를 써오며 그래도 꽤 잘한다고 생각해 왔었는데, 뭐가 문제였던가 골똘히 생각해 보았다. 예산을 세웠지만 각 항목에 대한 유연성이 지나쳤던 것이 문제였다. 예산에 대한 심리적 유연성은 항상 예산을 초과하여 지출액을 증가시키는 원인이 되었고, 매달의 이 금액들은 누적되어 크게 되돌아 왔던 것이었다. 생활스타일을 바꾸든지, 맘을 독해게 먹든지 뭐든 해야했다.

나름 고민 끝에 ‘전통적인 봉투법으로 돌아가자‘로 결론냈다. 항목별로 돈을 봉투에 넣고 그 봉투내의 돈으로만 생활하는 방법 말이다. 가장 고지식한 방법이지만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가계부 표 형식을 다시 다 뜯어고쳤다. 메모란만 그대로 별도로 남겨두고 월,일별로 지출하던 표 형식을 구체적으로 조목조목 빠지는 항목이 없이 칸을 만들었다. 각 칸마다 그 칸에 해당되는 지출예상 범위(연간포함)를 집어넣었다. 글의 장점이 뭔가? 포인트 팍팍 줄일 수 있지 않은가? 글자 포인트를 6으로 맞춰 필요한 계좌번호, 이율, 년 간 지출계획을 항목별로 다 집어넣었다. 가계부를 보면 1달만 눈에 잡히는 것이 아니라, 년 간 유동성이 다 파악이 될 수 있도록 필요한 사항들은 다 집어넣었다. 가장 상단에는 미래를 생각하며 정신 차리고 살자고 구호도 만들어 집어넣었다. 나름 비장했다.

그리고 바꾼 형식에 맞게 기록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월일로 기록하지 않고 항목별로 하니 어색했지만 이내 익숙해졌다. 항목에서 정한 액수를 초과할 것 같으면 약속도 다음 달로 미루고 사야할 것도 과감하게 포기했다. 어떻게든 봉투법에 따라 맞춰 살아보도록 몸부림을 쳤다. 쉽지가 않았다. 금방 초과되는 부분이 나왔다. 다시금 항목에 유연성을 부여하여 빚이냐 좀 나겠지만 그래도 좀 여유있게 살고 싶은 마음이 쑥쑥 올라왔다. 허나 지금 돈 없다고 그 항목 썼다가 몇 달 뒤 그 금액이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테니까 어떻게든 꾹 눌러 참았다.
그렇게 바꾼 서식에 맞춰 1년 넘게 살아왔는데, 현재론 꽤 괜찮은 편이다. 지출을 하면 지출 항목에 맞게 기록을 하고, 그 영역에 남은 돈이 영역예산에 미춰 얼마인지 금방 알 수 있으니까 편리하다.

현재 내 가계부엔 30개의 메모란과 40개의 항목이 A4 1장에 다 들어있다. 가계부를 쓰다가, ‘이렇게 항목이 많다니 어지간한 중소기업 장부라도 되겠군’ 하고 때로는 혼자 웃기도 한다. 쓰다 보니 주변 사람들에게도 가계부를 권하게 되고, 그러다 보니 가까운 지인들에겐 내 가계부 양식이 인기가 좋아 가계부 양식을 파일로 넘겨주며 이건 이렇게 하고, 저건 저렇게 하고 당신같은 경우는 이렇게 하는 것이 좋을 거라고 종종 열변을 토할 때도 생기게 된다.

가계부를 근 10년 가까이 기록해 오면서 몇 가지 소득이 있다.

우선, 숫자에 대한 감각이 밝아진 것은 내가 얻은 큰 소득이다. 그런데 그 감각들이 때로는 직장에서 맡은 일에 대한 철저함으로 전이되는 것을 보고 내심 깜짝 놀라곤 한다. 기록하고, 결산하고, 평가하고, 다시 예산을 세우는 이 일련의 과정들이 의외의 영역에서 엄청난 시너지효과를 내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또 하나의 매력은 돈의 흐름을 한 눈에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어디서 돈이 생겨 어디에 쓰고, 어디로 갈 예정인지 우리 집 돈에 관한 한은 한 눈에 볼 수 있고 그걸 통해 우리 집 돈의 향방에 대해 조절하고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은 가계부 기록의 엄청난 장점이다.

마지막 하나, 자존감이 높아진다. 나의 경우, 가계부를 쓴다는 것이 소비욕구 자체를 잠재우지는 못하는 것 같다. 어쩌다 화려한 명품들로 치장한 사람들을 만나고 돌아오면 나도 그런 것을 갖고 싶다는 욕구에 시달릴 때가 있다. 그러나 가계부를 펼치고, 계산을 끝마치고 나면 ‘음, 결론은 짝퉁이야!’ 그러면서도 기분 좋게 덮을 수 있는 것! 소비를 주체적으로 조절해 나가며 그 과정에서 스스로의 인간됨의 위대함을 맛볼 수 있다는 것! 너무 거창한가? 난 그게 가계부가 내게 주는 가장 큰 기쁨인 것 같다.

더구나 부모가 되고 아이들이 자라는 걸 보면서 특히 내 아이들에게 물려주어야 할 가장 귀한 습관은 돈사용에 대한 바른 개념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낀다. 많지 않은 세월을 살아오면서 돈 때문에 어그러지는 인생과 가정을 주위에서 심심찮게 보아왔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생긴 문제들은 도덕적 해이라기보다는 돈에 대한 무지 때문에 생긴 문제가 대부분이었다. 옆에서 지켜보며, 그리고 나의 경우를 되돌아 보며, 돈을 적절하게 관리하고 통제하는 법을 훈련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것임을, 그래서 아이에게는 반드시 가르쳐 주어야 한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그래서 가계부를 쓸 때면 일부러 아이 앞에서 소리 내어 쓰기도 한다. ‘오늘 ** 양말 샀으니 얼마, @@ 멜로디언 얼마! 너희도 나중에 돈을 사용하면 이런 식으로 꼭 기록해야 돼, 알겠지?’라고. 어떤 날은 아이들이 재촉하는 경우도 있다. 외출서 돌아오면, ‘엄마 돈 썼잖아, 가계부 쓰야지...’ 그럴 때의 우리 아이들의 반짝이는 눈빛이라니...

이 좋은 걸 왜 안한다 말인가? 난 앞으로도 계속 가계부를 쓸 거다. 필요하면 그때그때마다 내게 맞게 표 형식도 바꿔가면서 말이다.

여러분도 안 쓰는 분이 계시다면 한번 써 보기를 권한다. 1년 후가 틀릴 거고, 10년 후가 틀릴 거고, 먼 훗날의 바뀌어 있는 당신 모습이 바로 가장 큰 보상으로 돌아올 거다.


P.S: 내가 가계부 쓸 때 우리 남편은 뭘 했냐고? 남편과 결혼할 때 몇 가지를 약속했는데, 그 중의 하나가 돈 관리는 내가 하고, 남편은 용돈만 받는 거였다. 귀찮은 거에서 자기 해방시켜 달라는 거였고, 나 역시 흔쾌히 승낙했었다.
나 혼자 가계부를 쓰니 좋은 점,
첫째, 쓴 가계부를 보면서 시시콜콜 쓴 액수나 용처 가지고 부부간에 싸울 일이 없고(실제 주변에서 싸우는 부부 많이 봤고, 그 덕에 가계부 쓰기가 유야무야 되는 것을 많이 보았다)
둘째, 남편이 나를 전적으로 믿기 때문에 더 책임감 있게 관리를 하게 되고,
셋째, 두어 달에 한 번씩 남편에게 전반적인 집안 재정에 대해 얘기를 하면, 남편은 다음은 이렇게 하자고 방향성을 제시해 준다. 나는 구체적인 것에 신경 쓰고, 남편은 거시적인 것에 신경 쓰고... 누이 좋고 매부 좋고이지 뭐!

 

사회적기업 에듀머니

 가계부와 함께하는 즐거운 경제생활, 착한재무주치의가 함께합니다. ^^ 카페로 오시면 더욱 다양한 정보를 접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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