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련서비스

검색

검색어 입력폼

금융 메인메뉴

커뮤니티

커뮤니티 하위메뉴

게시판 운영정책

전문가칼럼

[가계부 이야기] 내 삶의 더하기. 가계부[10]
추천 0 | 조회 12485 | 번호 2292 | 2011.07.14 10:04 에듀머니 (edu7***)

아래 글은 이전에 에듀머니 가계부 수기공모 때 응모해주신 글입니다. 수기공모 한 번 하고 덮어두기에는 아까운 글이라서 소개해드립니다. 좋은 글을 올려주신 "숙스맘"님 감사합니다. ^^

 

+, 더하기..

그려볼 수 있을까?

소중한 나의 그것에 과연 적어 내려갈 날이 올수나 있을까.

 

꿈도 꿀 수 없을만큼 멀고 멀었던 그 날이 어느샌가 다소곳이 내 앞에 찾아오고 있었다.

50이 가까운 나이에 늦깍이 수험생처럼 힘들고 어렵게 쓰기 시작했던 나의 가계부에도 이제 그토록 그리던 더하기가 생기기 시작하였다.그것이 아이들 과자값도 되지 않는 단 돈 1000원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한끼 밥 값도 되지 않는 10000원 짜리 한 장이라 할지라도 그 더하기의 무게는 세상의 어느 것보다 커다랗고 중한 것이었기에 나는 내 가계부에 첫 더하기가 새겨지는 날, 가계부를 끌어 안고 밤새워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한 집안의 응석받이 막내로, 한 남자의 철없는 아내로만 50여년을 살아 온 나였었다.

부유하진 않았지만 먹성.입성은 걱정 없는 집에서 나고 자랐고,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결혼을 했다.10살이나 차이나는 자상한 남편을 만나 다시금 20년을 넘게 아내로써 세 아이의 엄마로 평탄한 세월을 보내왔었다.

 

어리고 나약한 아내를 늘 존중해 주고, 받들어 주던 남편...힘들어도 내색 한 번, 어려워도 도움 한 번. 청하지 않던 남편이었다. 남편의 낯빛에 조금씩 그늘이 생겨갈때도 세월의 탓이겠거니 지레 짐작하던 너무도 무심하고 부족한 아내가 바로 나였다.그런 아내가 너무도 미웠던지 혼자 감당해야 했던 삶이 너무 버거웠던지 남편은 갑작스레 운명을 달리하였다.

 

슬퍼 할 겨를도 없이 내 눈엔 어리디 어린 세 아이들을 먼저 추스러야 했다.대학교를 다니던 큰 아이, 재수를 하고 있던 둘째 아이, 아직 고등학생이던 막내를 부여잡고 어떻게든 살아야 했다.알지 못했던 남편의 빚을 갚느라 모든 것을 처분해야 했지만, 그래도 꽤 많은 빚이 나와 아이들의 몫으로 남았다.30년 동안 모든 것을 함께 나누었던 남편을 잃은 아픔과 함께 직장생활은 커녕 한푼도 벌어 본 적 없는 내게 닥쳐온 현실은 하루 하루가 고통일 뿐이었다.

 

생떼 같은 아이들을 생각하며 청소일이라도 남의 집일이라도 구해보고자 밤낮을 뛰어 다녔지만 오히려 나보다 먼저 취직이 된 것은 아이들이었다. 큰 아이는 휴학을 하고 직장을 구하고 둘째 아이도 재수를 포기한 채 사회로 나섰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엄마에게 오히려 용기를 주며 새벽녘 나가는 아이들 보기가 미안해서 아이들 걱정할 남편이 눈에 밟혀서 하루 하루가 가시밭길만 같았다.

 

그 무렵 결국 우리는 월세방으로 이사를 가야했고 이 짐은 버리고 이 짐은 팔고, 작은 집으로 이사가기 위해 짐을 정리하던 중 남편이 몇 년을 써온 가계부를 발견하였다.작은 수첩 속에 투박한 글씨체로 써 내려진 가계부. 남편은 얼마를 달라하면 아무 말 없이 척 내주던 통 큰 사람이었다. 어디에 무엇을 썼느냐, 단 한번도 돈의 출처를 물어 본 적 없던 나의 남편이 그토록 꼼꼼하게 가계부를 썼다는 것이 나는 믿어지지가 않았다.

 

가끔 회사의 금전출납부를 정리한다며 서재에서 담배를 피우던 남편의 모습은 기억 났지만 집안의 작은 지출까지 써져 있는 가계부는 의아함을 안겨주었다. 그 달의 수입, 적금, 보험료...남편의 가계부에는 많은 +(더하기) 가 적혀있었다.

 

아내 선물, 큰아이 등록금, 작은아이 학원비, 막둥이 운동화...남편의 가계부에는 그렇게 더하기 보다 많은 수 많은 - (빼기) 도 적혀있었다. 재밌고 흥미롭게 가계부를 읽어 내려가다 가계부를 덮을 때쯤 나의 눈시울을 이미 붉어져 있었다. 생활비며 가족을 위한 선물 등등 수 많은 빼기 속에 정작 당신의 것은 하나도 없었음을 남편이 쓴 가계부를 보며 금새 알수 있었기에...

 

적금 몇 달 남았다. 새차를 샀다. 라며 적혀있는 무뚝뚝한 남자의 귀여운 메모에도 하염없이 눈물만이 흘려내렸다. 너르진 않았지만 남편이 너무나 좋아했고 자랑스럽게 생각하던 남편의 피와 땀이 고스란히 담겨 있던 우리집을 팔고 도망치듯 뒤돌아 서면서 나는 공책 한권을 샀다. 가계부 하나 사는 것이 아까워 해가 지난 노트에 적어 내려갔던 남편의 가계부를 생각하며 노트에 날짜를 적어 가며 나는 이를 꽉 깨물었다.

 

꼭 남편처럼 아이들을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살 것을 다짐해 가며...하지만 언제나 필요하면 남편에게, 부족하면 알아서 돈을 건네주던 남편이 있었기에 가계부가 뭔지도 모르고 산 내게 가계부는 버거움이었다. 고사리손의 아이들과 집안 일외에 다른일을 해본 적 없는 내가 누구보다 열심히 일해서 번 돈이었지만 수입은 많지 않았고, 생활비와 남은 빚을 갚기에도 하루하루가 벅찼다.

 

 들어 올 곳은 없고 나갈 곳은 수십군데이니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지친 몸으로 가계부를 적는 시간이 짐스럽게만 느껴졌다.마이너스에서 시작한 나의 가계부는 여전히 -(빼기) 만이 가득했고 아무리 노력해도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뻔한 형편이 노력해도 펴지지 않는 살림이 한탄스러 한동안은 가계부 적는 것을 그만둘까 하는 생각도 여러번 하였다.

 

 그럴때 마다 나는 남편의 가계부를 꺼내 보았다.아내를 좀 더 편안하게 하기 위해, 아이들 공부 잘 시키기 위해 위해 누구보다 고단했던 남편의 가계부를...당신의 담배값을 줄여 생활비에 보태고, 어렵지 않은 형편에도 수년동안 3000원 짜리 백반으로만 점심을 대신하던 남편의 가계부를 어루만지면 나도 모르게 힘이 났다.

 

 남편처럼 더하기를 만들어 갔다.허리띠를 더 졸라매었다. 가계부에 +(더하기) 를 만들자는 신념으로 버스를 타야 할 때 걸었고, 새벽에 일어나 아이들의 것까지 두세개의 도시락을 쌌다. 틈틈이 남는 시간마다 부업을 했고, 겨울이 되면 내복을 꺼내어 입었다. 조금씩 더하기는 늘어났지만 때로는 한숨이 때로는 눈물이 났다. 한 참 자라는 아이들 먹고 싶은 것 입고 싶은 것 한 번 제대로 해 줄 수 없을 때, 돈이 없어아이가 한 해 더 휴학해야 했을 때, 비 내리는 날 다 떨어진 운동화를 신고 다니느라 아이의 양말이 새카맣게 젖어 있는 것을 보아야 했을 때...꼭 이렇게 살아야 하나라는 마음이 하루에도 열두번씩 나를 괴롭혔지만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나는 내 가계부를 지켜가야 했다.

 

 가계부를 쓴지 한 해, 두 해, 세 해...오라버니의 도움으로 큰 아이가 다행히 대학공부를 마치게 되었고 번듯한 직장에 취직하게 되었고 살림은 조금씩 나아져갔다.형편없던 가계부 쓰기도 이력이 붙었는지 처음엔 계산도 잘 맞지 않아 한참을 헤매였던 것이 그 무렵 부터는 늘 해오던 일을 하듯이 편안해졌다.하루를 돌아보듯 가계부와 그날을 마감했다.

 

 한푼이라도 틀림이 있을까 한푼이라도 허투루 쓸까 쓴 돈은 영수증이나 메모로 틀림 없이 기입하는 것이 버릇이 되었고, 작은 것 하나라도 사야할 일이 생기면 가계부를 훌터 보며 꼭 사야 할 것인지 두세차례 다시 생각하는 습관을 갖게 되었다. 그 모든 것은 가계부를 쓰며 자연히 생긴 것들이었고, 생각없이 돈을 쓰고 보던 예전의 나는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가계부는 일기가 되었다. 여전히 빚을 갚아가고 있는 처지, 남은 두 아이들 공부시킬 일도 너무도 까마득한 일이었지만 가계부를 쓰면서 작은 희망은 생겨났고 그날의 수입, 지출과 함께 가계부에 적혀갔다.월급 오른 날, 막내 장학금 받은 날, 둘째 아이가 내복 사온날 등...못난 엄마 밑에서 푸념한 번 없이 잘 자라준 아이들과 나의 노력만큼 정직하게 펼쳐지는 가계부는 그렇게 내게 하루를 살아가는 힘이 되어주었다.

 

 어둠속에 멈춰 버린 것만 같았던 시계는 돌고 돌아 가계부를 쓴지 벌써 8년여가 되어간다.고등학생이었던 막내 아들은 대학을 졸업하고 얼마 전 첫 월급을 내 가계부에 끼워 놓았다.그리고 늘 언제나 변하지 않고 (-)로만 채워져 있으리라 생각했던 내 가계부도 간간히 이지만 이제 남들의 그것처럼 (+)가 새겨져 간다.

 

 더하기를 찾기 위해 수 많은 날이 참 힘들었다.아이들을 위해 내일을 위해 참고 노력했던 내 가계부는 분명 눈물이고 아픔이었다. 나와 아이들의 고통이었고 슬픔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야 비로소 완전한 더하기를 찾은 내 가계부는 웃고 있다.가족을 위해 허리띠를 졸라메던 아무도 모르게 자신을 희생하던 남편의 가계부는 어쩜 오래전 부터 웃고 있었을지 모른다.고통과 아픔의 날이 지나면 더욱 아름다운 희망과 찬란한 미래가 오는 것처럼 가계부는 희망을 열어주는 열매였기에 가계부는 미래를 피워주는 꽃이었기에 내 가계부의 (+,-) 더하기와 빼기는 모두 내 삶의 더하기 였노라 나는 말하고 싶다.

 

 

사회적기업 에듀머니

가계부와 함께하는 포근한 경제생활~ 착한재무주치의가 함께합니다.

 

0
0
신고


푸터

카카오가 제공하는 증권정보는 단순히 정보의 제공을 목적으로 하고 있으며, 사이트에서 제공되는 정보는 오류 및 지연이 발생될 수 있습니다.
제공된 정보이용에 따르는 책임은 이용자 본인에게 있으며, 카카오는 이용자의 투자결과에 따른 법적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Copyright (c) Kakao Corp. All rights reserved.
위 내용에 대한 저작권 및 법적 책임은 자료제공사 또는 글쓴이에 있으며 카카오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