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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엠리치]‘극심한 기근 상태에서 마을에 전염병까지 돌아 아버지가 죽고 이어 맏형과 여러 형제들이 연이어 사망하고, 둘째 형수와 셋째 형수, 둘째 형의 아이들과 어머니 진씨마저 사망했다. 혈혈 단신 고아가 된 그는 하루 한 끼도 먹기 어려운 생활을 견디다 못해 승려가 되기로 하고 출가했지만 절이라고 끼니가 충분할 리 없었다. 두 달 만에 그는 탁발승이 되어 여기저기를 떠돌아 다니며 사실상의 비렁뱅이 생활을 하게 된다.’

이는 원(元)나라를 멸망시키고 명(明)을 건국한 명태조(明太祖) 주원장(朱元璋)(1328~1398)의 유년 시절 얘기이다. 당시 중국의 중부와 북부 지방에서는 기근과 가뭄으로 700만 명 이상이 굶어 죽었는데 이에 중앙 정부가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자 홍건적의 난이 일어나고 결국 평민 출신에 의한 민중봉기로 이어져 원(元)나라는 중원을 지배한 지 100년을 채우지 못하고 유랑민 출신 주원장에 의해 북으로 격퇴당하고 만다.

‘가구당 연간 수입이 700위안(약 12만원)에도 못 미처 설이 되어도 폭죽 소리 하나 들을 수 없는 적막한 마을, 갖가지 조세 부담에 항의하다 파출소에서 몰매 맞고 죽어간 농민, 제왕처럼 군림하며 무자비한 폭력과 탐욕스런 수탈을 일삼는 향촌(鄕村) 관료들…’ 이는 주원장으로부터 700년 후인 2004년, 중국 농민문제를 폭로한 ‘중국농민조사(中國農民調査)’라는 책의 내용이다.

먹고 사는 것 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백성이 굶주렸을 때 그 백성들의 힘에 의해 나라가 멸망하거나 멸망의 단초가 된 사실(史實)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너무도 많다. 더욱이 수 많은 나라가 수 많은 사람들과 함께 이합집산(離合集散)을 거듭한 중국의 역사는 곧 민란의 역사라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중국 최초의 통일 국가였던 진(秦)나라가 멸망하게 되는 시발점은 진승과 오광에 의한 민란이었고, 동한(東漢) 말기의 황건적의 난과 당(唐)나라 말기의 황소의 난, 송(宋)나라 시절 방랍의 난, 원나라 말기의 홍건적의 난, 청(淸)나라 백련교도의 난과 태평천국의 난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난들이 모두 배고팠던 민중에 의한 난(亂)들이었다.

빛이 있으면 그늘이 있듯 중국의 눈부신 발전 뒤로는 많은 문제들이 도사리고 있다. 그 중 가장 큰 문제가 도농(都農)간의 격차, 빈부(貧富)의 격차이다.

상하이나 베이징 등 대도시의 화려한 빌딩 숲을 몇 시간 만 지나면 일년에 백 불로 생활하는 농촌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공식적인 통계에 의하면 13억 중국 인구 중 농민의 숫자는 7억 명을 넘는다. 이들은 도시 근교에서 농업에 종사하는 일부 농민을 제외하면 대부분 빈곤층에 속한다.

딸이 몸을 팔아 매달 부쳐주는 돈이 아버지가 일년 농사를 지어 번 돈보다 많다는 소문에 마을 사람들이 서로 딸을 더 낳으려 한다는 내용의 소설이 있었다. 이 농민들이 도시로 도시로 나오고 있다. 요즘 중국 농촌엔 노인과 어린아이,부녀자들 밖에 없다는 소리가 나올 정도이다. 이들이, 신분은 농민이면서 토지를 버리고, 도시에서 육체적 노동을 하며 하루하루 근근이 버티며 살아가는 ,그야말로 농민도 아니고 완전한 공인(工人)도 아닌 소위 농민공(農民工)으로 불리어지는 유랑민 집단이다. 이러한 농민공이 일년에 2000만 명씩 생기고 있다.

오늘날의 중국 공산당 정권은 노동자,농민을 위한 프로레탈리아 혁명이 그 바탕이다. 그리고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중국 도시의 화려함은 이들 농민공의 살인적인 저임금과 임금 체불에 시달린 희생의 결과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들에게 불만이 없을 수 없다. 필자가 중국에서 본 이들의 생활은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비참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일자리가 있으면 그나마 견딜만 하다고 했다. 무슨 일을 하더라도 농사를 짓는 것 보다는 수입이 괜찮다고들 했다. 그러나 이들이 만약 최소한의 의식주를 해결해 주는 일자리 조차 구하기 힘들어 진다면, 문제는 심각해 질 소지가 다분하다. 잠재되어 있던 그들의 불만은 결국 폭발하고야 말 것이다.

여기에 중국 정부가 결코 양보할 수 없는 GDP 8% 성장의 비밀이 있다. 도시를 유랑하는 이들 농민공의 생계 문제를 해결하려면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 현재 3.5~4%대를 오가는 도시 실업률을 현상 그대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최소 8%정도의 경제 성장율을 유지해야 한다고 한다. 경제 성장율이 1% 떨어지면 일자리는 무려 800만개 이상이 사라진다.

위안화의 절상이나 무역 불균형 문제 등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의 압력이 언론에 발표될 때 마다 필자는, 지금 중앙정치국 후보위원으로 있는 중국 친구의 비장했던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그는 정말 그랬다. ‘누가 뭐라고 해도 우리 백성들이 먹고 사는 문제에 대해서만은 결코 양보하지 않을 것이다.’ 13억을 먹여 살리는 일은 결코 보통 일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