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곤국에서 구호 활동을 하는 활동가들에 의하면 굶주리는 사람들이 간절히 바라는 것은 식량이 아니라 씨앗이라고 한다.
실제로 구호자금이 한정돼 한 마을에는 씨를 나눠줬지만 옆 마을은 주지 못한 일이 있었다고 한다. 가뭄으로 씨앗이 싹을 틔우지 못했고, 아무것도 받지 않은 마을과 마찬가지로 굶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아무것도 받지 않은 마을에는 아사자가 속출한 반면 씨앗을 받은 마을 주민은 한 사람도 죽지 않았다고 한다. 씨앗이 희망이었기 때문이다.
소득이 낮은 고객들을 상담하면서 비슷한 경험을 한다. “저축을 하기 전에는 미래가 너무 두려웠어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거든요. 사회의 도움만으로 생활비를 충당하고 있으니 미안한 마음만 있었고요. 그런데 저축을 시작하고서는 그런 불안감이 많이 사라졌어요. 제가 자랑스럽기도 하고요. 아이의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는 생각 때문에 아이에게도 덜 미안해요.” 월 수급비 70만원을 받는 어느 한부모 어머니의 이야기다. 저금리이기 때문에 손해를 본다는 생각으로 저축을 기피하는 현상이 사회적으로 심각해지고 있지만 저축의 효용성은 이자율에만 있지 않다는 것을 실감케 하는 대목이다.
스스로 자립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은 일방적인 도움을 받는 사람에 비해 자존감이 높다. 그 자존감은 목표의식을 구체화시키고 자립에 대한 희망을 갖게 한다. 일부 사회 활동가 중에는 저소득층이 턱없이 부족한 사회보장 시스템 안에서 결핍을 감수한 저축으로 사회에 대한 비판의식이 희석화되는 것을 우려하기도 한다. 소비를 조절하고 저축을 할 것이 아니라 사회안전망을 늘려야 한다는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는 것이 우선이라는 것이다. 전혀 틀린 말은 아니다. 현재의 사회안전망 안에서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최선을 다해 살아왔지만 어느 한 순간의 부주의로 취약계층으로 전락할 경우 사람다운 삶을 살 만큼의 사회안전망이 확충되어 있지 않은 것에 불안을 느끼며 산다.
그러나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과 개선 의지는 자존감과 희망이 있는 사람이 더욱 적극적으로 제기할 수 있다. 소비를 조절하고 저축을 통해 최저생계비에도 못미치는 돈으로도 희망을 만들어가면서 심리적으로 안정되고 자존감이 높아져 사회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되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저소득층은 물론 사회 전반적으로 저축률이 최악의 수준으로 치닫고 있다. 저축률이 글로벌 꼴찌라는 불명예도 안게 되었다.
그 어느 때보다 돈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대단히 높은 분위기이지만 부채는 늘어나고 저축은 줄어드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모두가 부자가 돼야 한다는 강박증에 시달렸지만 정작 엄청난 ‘빚거미’에 잡힌 신세다. 빚거미의 그물은 사람들에게 재무적 무력감을 준다. 개선하려는 노력은커녕 오히려 자신의 건재를 확인하기 위해 소비를 늘리기도 한다. 이런 무력감은 사회에 대해 비판의식이 아닌 비관을 심는다. 비관은 분노로 이어지지도, 사회적 모순의 해결을 위한 연대로 이어지지도 않는다.
반면 저축은 희망을 준다. 문제의 핵심을 파고 들려는 의욕과 자신감을 준다. 저금리 환경은 저축하는 사람들을 희생하는 인위적 정책이다. 이자율만 보고 저축에 대한 무력증을 가져서는 안될 것이다. 사회 전반에 해결돼야 할 과제가 산적한 지금 우리에게는 재정적 희망, 저축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사회적기업 에듀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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