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우리집은 몇 평이야?
아이는 ‘왜?’라는 말을 배운 후부터 세상 모든 것에 대한 궁금증을 부모에게 쏟아 놓는다. 아이다운 엉뚱한 질문에 답하면서 부모는 세상을 때 묻지 않은 순수한 아이의 눈높이에서 보는 즐거움을 경험하기도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의 입에서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이야기를 듣는다.
‘엄마, 우리집은 진짜 우리집이야?’
‘아빠, 월급은 얼마나 받아?’
‘엄마도 재테크는 해?’
‘우리집은 몇 평이야? 왜 우리는 이렇게 좁은 데서 살아야 해?’
오랜 진통 끝에 만난 아기는 너무나도 작고 연약했다. 목욕을 시키면서 행여 마시멜로처럼 여린 몸이 어딘가 잘못되지나 않을까 걱정했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아이의 작은 몸짓에도 감동했던 시간을 기억할 것이다. 아기는 엄마에게 한순간의 틈도 주지 않고 자기 곁에 꼭 붙들어 매는 불편한 존재이면서도 세상에 나와 제일 먼저 배우는 ‘엄마’라는 말을 통해 온갖 불편함을 감수하게 하는 가장 감동스러운 존재이기도 하다.
이유 없이 고집 피우고 말썽을 부릴 때면 밉다가도 야단을 맞고도 ‘엄마, 사랑해’ 하고 말하며 엄마 품에 얼굴을 묻는 소중한 새끼였다. 속상한 일로 마음 상해 있다가도 아가의 맑은 눈을 보면 미안함과 고마움이 가슴에 파도치듯 이는 경험을 해보지 않은 엄마는 드물 것이다.
언제나 그 아이의 눈에는 엄마만 들어 있을 것 같았는데, 아이는 금방 자란다. 엄마만 보던 아이의 시선이 언젠가부터 더 먼 곳을 향하고, 더 넓은 세상을 향해 걸어 나가기 시작한다.
사춘기로 접어들면 아이와 엄마 사이에 거리가 생기기 시작한다. 서운한 마음을 달래며 아이의 성장을 받아들이기도 전에 부모는 사춘기 자녀로부터 경제적 수준에 대한 매서운 평가를 받는다.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와 경제적 문제로 갈등을 겪지 않는 가정은 드물다. 아이의 의문과 부모의 경제 수준에 대한 불만은 부모의 인생을 뿌리째 뒤흔들기도 한다.
대부분의 부모들은 자녀들이 경제력에 대한 질문을 하면 당황한다. 부모가 애써 숨기고 있던 경제적 열등감과 콤플렉스를 아이가 벌거벗기는 기분이다.
20평형대 집에 살면 30평형대 친구 앞에서 주눅이 들고, 명품 가방 하나 없으면 동창 모임에 나갈 자신감을 상실하는 부모는 아이의 경제적 호기심이 부담스럽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쓸데없는 데 신경 쓰지 말고 너는 공부만 잘하면 된다”고 야단을 치면서, 아이의 경제적 호기심을 무시하고, 질문에 제대로 대답하지 않는다.
그 결과 부모는 아이에게 제대로 경제를 가르칠 대단히 중요한 기회를 잃고, 아이들은 올바른 경제생활을 배울 기회를 무시당한 채 주위 친구들과 자신을 비교하면서 상대적 박탈감을 키워간다.
우리 아이의 경제관념을 위협하는 것은 곳곳에 산적해 있다. 광고나 드라마 같은 미디어의 힘은 엄청나다. TV를 없애고 인터넷을 끊는다 해도 기업의 달콤한 마케팅은 대형마트에서, 병원에서, 학교 등 도처에서 집요하게 이뤄진다.
사춘기에 들어서면 돈을 둘러싸고 부모와 자녀의 갈등이 심해진다. ‘전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얼마 전, 10대 아들이 보험금을 노리고 부모와 누나를 청부살해한 사건이 있었다. 범인인 아들은 “강남에 살고 싶었다. 돈만 있으면 가족은 필요 없을 것 같았다”라고 말해 세상을 경악시켰다.
이것은 극단적인 예지만, 우리 청소년들이 돈에 대해 얼마나 왜곡된 의식을 가지고 있는지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건이다.
엄밀히 따지면 광고의 유혹에서 부모도 자유롭기 힘들다.
아이는 물론, 당신이 생각하고 있던 상식을 충분히 바꿀 수 있을 정도로 집요하다. 돈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것은 이제 의식적으로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무의식적으로 사람들에게 눈에 보이지 않는 바코드를 붙이고 가격을 매긴다.
실력이 좋거나 운이 좋으면 명품매장에 우아하게 놓이는 신세가 되어 모두의 부러움을 살 수도 있고 잠시나마 쇼 윈도우를 장식하면서 화려한 조명을 받을 수도 있다.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은 유행이 지나 버려 창고나 매장 한 구석에 처박히는 신세가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부러움을 사거나 화려한 조명을 받는 정도는 아니더라도 그런 신세는 되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모두가 자신의 바코드를 점검하느라 바쁘다.
이런 두려움은 자녀 교육이나 양육에도 그대로 이전된다.
게다가 기업의 마케팅 전문가가 치밀하게 짚어낸 부모들의 약점은 정확하다. 마케팅업계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아이들’이 돈이 된다는 사실을 알았다.
아이들 뒤에 여섯 개 주머니(엄마 아빠, 할아버지 할머니, 외할아버지 외할머니)가 딸려 온다. 불황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키즈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키즈 마케팅, 1020마케팅이 한창인 까닭이다. 마케팅업계에서는 키즈 마케팅을 이렇게 정의한다.
“키즈는 구매력을 갖고 있지는 않지만 구매에 대한 영향력이 막강하다. 제품의 구매자와 사용자가 다르다. 키즈는 차세대 중요한 고객이다. 키즈는 선망집단이나 또래 집단의 영향력을 크게 받는다. 부모는 키즈를 통해서 대리만족 소비를 한다.”
그러고는 노골적인 실천 지침까지 내려준다. “귀한 자식 매 한 대 때리고 미운 자식 떡 하나 준다라는 말은 요즘 세상에는 어울리지 않는 그야말로 구시대적 발상이 되어버렸다”며, “바빠진 맞벌이 부모들의 죄의식을 자극하라”는 전략을 내세운다. 아이와 충분한 시간을 보내지 못하는 부모가 안쓰럽고 미안한 마음을 돈으로 보상하게끔 유도하는 것이다.
이런 치밀한 전략 아래 기업들은 당신과 당신의 자녀를 대상으로 캐릭터와 명품, 감성과 유행을 쫓아가라고 부추긴다. 그 유혹의 결과, 수입 명품 유모차가 흔해지고 아이를 안고 있는 해외 유명 스타들의 사진이 인터넷에 뜨면, 스타 모녀가 입고 있는 옷과 신발은 동이나 버린다.
가사도우미로 일하면서까지 아이가 원하는 mp3 플레이어와 브랜드 옷, 나이키 운동화를 사 준다. 요즘은 아이의 겉모습을 보고 부모의 경제수준을 짐작할 수 없다. 아이가 원하는 걸 해주지 못하는 부모에겐 무능한 부모라는 낙인이 찍힌다. 모자람 없이 자라야 어디 가서도 당당하고, 명품 소비에 익숙해져야 커서 많은 돈을 벌기 위해 노력하는 성취지향적인 성인으로 자랄 수 있다는 잘못된 믿음을 가진 부모도 있다.
그저 평범한 사람이라면 이런 과학적이고 조직적인 소비 유혹의 공격, 마케팅 공략에 흔들리는 것은 당연하다. 우리는 이미 유혹에 길들여 있다. 그렇다고 해서 전적으로 당신의 잘못이라고 할 수도 없다.
오히려 이런 환경에서 남다른 경제관을 유지할 수 있으려면 종교인이거나 전문가 혹은 특별한 이념을 가진 경우만 가능할 것이다. 그저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사는 것만으로는 경제적 박탈감, 소외감, 유아적 우월의식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설사 당신이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면서 주변으로부터 구질구질 하다거나 짠순이라는 평가를 자처한다 하더라도 그것만으로는 불안정하다.
‘내 나름대로’라는 삶의 방식을 고집하고 있는 당신이라도 아이의 마음속에 들어앉아 있는 것은 불가능하다. 게다가 아이가 커나갈 수록 당신과 보내는 시간을 적어지며, 미디어와 기업의 마케팅만이 아니라 또래 친구들과 그 친구들의 부모들로부터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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