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사람들은 무리수를 써가면서까지 돈을 벌려고 하는 걸까?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을 많이 벌고자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인데, 무슨 공자님 말씀이냐고 반문할 지 모르겠다. 혹은 어느 지역에서 살고 있느냐에 따라 어느 대학에 들어가느냐가 결정되고, 어느 대학 출신이냐에 따라 아이들 인생이 바뀌는 것이 엄연한 현실인데, 돈이 있어야 아이들 교육을 시킬 것이 아닌가? 라고 분개하실 학부모도 있을 것이다. 맞는 말이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표현처럼 지금의 한국사회를 잘 나타내주는 말도 없는 것 같다.
그런데 어쩐지 좀 서글픈 생각이 든다. 삶의 목적이란 궁극적으로 행복하고자 함인데, 부와 행복이 비례한다면 결국 인생의 목표는 돈을 많이 버는 것, 즉 돈 그 자체가 목적이 되는 것이 아닌가? 돈 때문에 사람을 죽이고, 돈 때문에 건강을 해치고, 돈 때문에 일 중독자가 되는, 그래서 돈의 노예로 사는 삶이 바람직한 것이란 말인가?
‘세상물정 모르는 철부지도 아니고, 사회의 구성원리와 동작 메커니즘이 그렇게 작동되고 있음을 모른단 말인가?’ 라고 질책해도 할 수 없지만, 이 질문에 대해 일정한 해답을 구하는 것은 상당히 중요한 의미가 있다. 왜냐하면, 적어도 이성적으로 우리 모두는 돈의 노예가 되고 싶어하지 않으며, 좀 더 인간다운 삶과 생활을 가져가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답’ 안에서 인생과 삶에 대한 희망의 ‘단서’를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10억이면 가족도 버릴 수 있는 무서운 세상
작년 초, 모 방송국에서 흥미로운 특집 프로그램을 방송한 적이 있다. 한국인의 돈에 대한 관점과 철학을 조명해보고자 하는 의도로 기획된 것인데, 내용 중 인상적인 설문결과가 있어서 소개한다.
ü 얼마 정도면, 가족 혹은 친구와 관계를 끊을 수 있겠습니까?
ü 돈 걱정 없이 살기 위해서는 얼마가 필요할까요?
ü 어느 쪽이 더 행복하시겠습니까?
- 나는 200을 벌고, 남들은 100을 번다
- 나는 400을 벌고, 남들은 800을 번다
첫 번째 질문에 대해, 10억 이상이면 끊을 수 있다고 답한 사람이 전체의 53%에 달했다.
두 번째 질문에 대해, 가장 많은 사람들이 답한 액수는 20억 원이었다.
세 번째 질문에 대해, 절반이 넘는 사람들이 200을 버는 쪽을 선택했다.
첫 번째 사실은 행복의 제 1 조건을 돈으로 생각하는 ‘돈(crazy)’ 사회의 단면을 여과 없이 보여주고 있고, 두 번째 사실은 재산의 크기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값을 나타내고 있고 (이렇게 답한 사람들의 53%가 그 금액을 모으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답변함), 세 번째 사실은 비록 없이 살더라도 남들보다는 우위에 서고 싶다는 한국인의 허위의식을 반영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지금 우리는 부(富)가 행복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 되어버린 사회에 살고 있는 것 같다. 당신이 황금을 보기를 돌같이 하는 고결한 영혼의 소유자이건, 돈이 곧 전부라는 황금만능주의를 인생관으로 삼고 살아가는 사람이건 이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우리들 모두는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타고 미친 듯이 앞으로 달려가면서도, 또 한편 끊임없이 성공과 부를 추구하는 ‘사회적 질환’에 중독되어 있는 것 같다. 이 가공할 집단최면 상태는 마치 영화 매트릭스에 나오는 가짜 세계를 떠올리게 한다.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 거대한 코드상자(code box) 속의 세계.
욕망이 아닌 행복을 위한 길을 가야한다.
만일 당신이 인생에서 진실로 소중한 무엇인가를 추구하고자 한다면, 모두가 위를 향해 올라가는 이 욕망의 사다리 게임을 걷어치울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 맹목적인 출세지향이 아닌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걸으며, 욕망의 추구가 아닌 무언가 의미가 다른 가치관에 따라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그런 ‘힘’ 말이다. 이 용기는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요건도 성립되어 있지 않은 조건에서 ‘가난해도 행복하다’고 말하는 비현실적인 ‘자기기만’과는 다르다. 경제적 행위의 목적을 행복으로 정의하고, 눈앞의 거짓된 세상과 결별하고, 새로운 질서와 패러다임을 만들어갈 수 있는 가치와 철학이다.
그런데, 당장 다음 달에 결제해야 할 자동차 할부금과 아이들 유치원 비, 그리고 우리 가족의 일용할 양식은 어떻게 해야 하지? 아내는 내 마음을 헤아리고, 이 낯선 열차에 흔쾌히 몸을 실어줄까? 과연 지금 내 안에 남들과 전혀 다른 삶을 개척해나갈 수 있는 용기의 불씨가 존재하기는 한 것일까? 이 문제는 우리 모두에게 여전히 어렵고도 힘든 주제인 것 같다. 지금 누리고 있는 것들을 버리고, 새로운 ‘옷’을 갈아 입어야 하는 큰 결단을 요구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럼에도 지금 우리 사회 한 켠에서는 ‘기성(旣成)의 가치’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고 좀더 인간다운 삶, 좀 더 보람된 가치를 좇아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의 수가 더디지만 조금씩 늘어나고 있는 것 같다. 좋은 대학을 나왔지만, 기득권을 버리고 좀더 가치 있는 일을 하기 위해 사회적 기업에 들어간 20대 청년. 팍팍한 도시생활을 과감히 청산하고 ‘진짜’ 농사꾼이 되기 위해 귀농한 40대 아저씨. 그리고 낮은 곳으로 임한다는 것이 무엇인가를 새롭게 경험하여 제2의 인생을 살아가는 60대 젊은 할아버지에 이르기까지, 아직 뚜렷한 변화라고 할 수는 없으나 아주 의미 있는 ‘변신’이 진행되고 있는 것 같다.
우리의 궁극적 목표는 인간으로서의 행복한 삶이다. 이념과 생각의 높고 낮음을 떠나, 이 명제보다 우위에 설 수 있는 것은 없다. 이것이 당신과 나, 그리고 우리들 주변의 보통사람들이 추구하는 삶의 가치이며, 헌장이다. 우리의 행복추구권은 누구로부터도 간섭 받아서는 안 될 신성한 권리다. 돈을 번다는 것, 경제활동을 한다는 것은 행복한 삶을 이루어 가기 위한 수단이며, 방법이다. 그러므로 내게 허락된 조건 속에서, 최선을 다해 일용할 양식을 구하도록 노력하자.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자원들을 가지고 최대의 효과를 창출할 수 있도록 힘쓰자.
빚이란 실체적 크기의 문제라 아니라, 정신의 문제이다. 빚을 내어 무언가를 도모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는 있는 한, 빚의 굴레로부터 벗어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감당할 수 없는 빚이건, 감당할 수 있는 부채건 본질적으로 빚이란 재산의 일부만을 훼손하는 것이 아니라, 가정경제 자체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 덫과 같다. 다른 사람들이 가는 방향으로 무작정 휩쓸려 다니지 말자. 빚을 내야만 하는 절박한 상황에 노출되지 않도록 힘쓰자. 빚에 찌들려 사는 것보다 가난하게 사는 것이 더 나은 방법이다.
다른 사람이 만들어 놓은 기준을 따라가지 말고 나의 목표와 기준을 수립하자. 그것이 무엇이건 나에게 있어 소중한 것이면 족하지 않은가? 그렇게 결정된 내 목표를 향해 매일매일 씨를 뿌리고, 밭을 일구는 농부의 마음으로 살아가자. 가족의 꿈을 만들어 줄 재정의 가치를 소중히 알되, 돈의 노예가 되지 말자. 돈이건, 신용이건 혹은 또 다른 무엇이건 제대로 알지 못하면, 올바로 활용하지도 못하는 법. 현명한 경제적 삶을 추구해 가자. 버는 일과 쓰는 일의 균형점을 잘 유지해 가는 것이 중요하다. 인생은 수익률 게임이 아니다. 적게 벌더라도, 그 규모의 경제 안에서 지금보다 더 나은 내일을 향한 작은 희망의 불씨를 만들어 가면 된다. 우리 삶에는 돈 보다 더 소중한 것들이 많다는 것을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알려주고, 또 우리들 자신이 살아있는 등대가 될 수 있도록 힘쓰자. 땀 흘려 열심히 일한 사람들이 좌절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그런 사회, 그런 미래를 만들어 가자.
사회적기업 에듀머니
문 진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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