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요즘 식량의 가격 상승으로 인해 초긴장 상태이다. 각종 곡물류 가격이 급등하고 있다. 지난해 초만 해도 t당 300달러 수준에서 거래되던 쌀값이 불과 1년 3개월여 만에 무려 3배 가까이 폭등했다.전통적인 쌀 생산국가인 필리핀에서는 식량난에도 불구하고농부들이 상업을 위해 농사를 포기하고 있다.
부셸당 12달러까지 급등했던 소맥(밀) 가격은 최근 8달러까지 내려왔지만 4.8달러 수준이었던 지난해 초에 비해선 여전히 거의 곱절에 가까운 수준이고 옥수수, 대두 역시 마찬가지다.
식량가격이 치솟자 전 세계에서는 폭동마저 빈발하고 있다. 아이티에서는 총리가 쫓겨났고 카메룬에선 시위로 24명이 죽었다. 이집트 대통령은 군대로 하여금 빵을 구우라고 명령했고 필리핀에서는 쌀을 사재기하다 적발될 경우 종신형에 처하겠다고 경고했지만 사정은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없다. 문제는 이러한 상황이 조만간에 가라앉을 기미가 보이질 않는 다는 것이다.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기본적이면서 소중한 것은 역시 먹는 문제인데 세계은행에 따르면 전 세계 65억 인구 가운데 10억 명 이상 빈곤 인구가 하루 1달러 이하 생계비로 살아가고 있으며 쌀. 옥수수 등 곡물가격이 20% 이상 오르면 약 1억 명이 절대빈곤층으로 전락할 수 있다고 하니매우 심각한 상황이다.
지난 30여 년간 나름대로 안정적이었던 곡물 가격이 이렇게 폭등한 까닭은 무엇인지 분석해 보는 것은 향후 미래를 준비하는데 있어 매우 유효할 것이다. 곡물가격폭등의 이유는 근본적으로는 수요와 공급이 맞질 않기 때문이지만 자세하게 들여다보면 다음과 같이 몇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첫 번째 이유는 원유 가격이 배럴당 120달러에 육박할 정도로 치솟는 가운데 생겨난 바이오디젤 열풍이 식량용 곡물 생산을 줄어들게 했기 때문이다.
대체 에너지로 부각된 바이오디젤과 에탄올의 연료가 되는 옥수수는 가격이 두 배, 세 배 뛰었고 미국의 다국적 곡물 기업들은 밀, 대두 등 식량과 사료 작물 생산을 줄이고 옥수수 생산을 늘렸다. 원래 세계 곡물은 수요와 공급이 거의 맞아 떨어져서 비축량이 그리 많지 않은 상황인데 최근 수년간 가뭄이 잇따르면서 식량 생산에 차질을 빚은 데다 원유 가격이 배럴당 120달러에 육박할 정도로 치솟는 가운데 생겨난 바이오디젤 열풍이 식량용 곡물 생산을 줄어들게 했다.
그 바람에 바이오디젤 생산량은 지난 연말 9억 배럴 수준까지 치솟았고 이 과정에서 옥수수 가격은 연쇄적으로 급등했고, 생산량이 줄어든 밀, 대두 가격도 덩달아 오른 것이다. 공급은 줄어들고 재고도 바닥수준이라서 식량재고는 26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지만 곡물을 원하는 수요는 계속 늘고 있다.
두 번째 이유는 개발도상국들의 발전에 따른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는 것이다. 13억 인구 대국 중국의 경제 발전이 급피치를 올리면서 중국인들의 고기 수요는 1980년 연평균 20㎏에서 지금은 50㎏으로 증가했는데 소, 돼지를 키우기 위해선 그만큼 사료 수요가 증가하고 사료 원료인 옥수수의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 것이다.
세계식량기구(FAO)에 따르면 지난 1980년 이후 곡물 생산량 증가율은 매년 평균 2%에 불과했지만 곡물수요는 평균 3.5%씩 증가했다. 곡물 생산 증가율이 인구와 소비패턴 변화에 따른 수요 증가율을 따라잡지 못하면서 대기근이 발생한다는 맬서스의 '주장이 현실로 닥쳤오고 있는 것이다.
세 번째 이유는 식량안보라는 기치 하의 자원내셔널리즘의 대두이다. 세계의 주요 곡물가격이 앙등하자 생산국들은 자국의 이익을 위하여 수출을 제한하기 시작했고 이러한 조치는 악순환으로 곡물가격을 치솟게 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세계에서 쌀을 주식으로 하는 인구는 약 30억 명이다. 이들은 대부분 아시아와 아프리카에 살고 있는데 한국을 포함한 대부분의 국가들이 '식량 안보'를 내세우는 바람에 쌀 생산에는 국가 간의 분업에 의한 비교우위 논리가 정착되지 못하여 생산량이 늘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쌀값은 올해 들어서만 141% 이상 급등했는데 대부분 자급자족을 하기 때문에 국제 교역량이 많지 않아서 가격은 크게 출렁거리게 된다.
중국은 쌀 수출을 억제하기 위해 올해부터 관세를 부과하는 등 식량 재고 관리에 나섰다. 세계 2위 쌀 수출국인 베트남도 쌀 수출 통제조치를 오는 6월까지 연장키로 결정했다. 폭동이 일어났던 이집트도 오는 10월까지 향료쌀을 제외한 일반 쌀 수출을 금지했다. 세계 1위인 태국도 조만간 쌀 수출을 통제할 것이란 루머가 나돌고 있는 상황이다.
1798년에 초판이 발행된 맬서스의 인구론은 발행 당시에는 엄청난 충격이었지만 결국 틀린 것으로 결론이 났었다. 맬서스는 산업혁명을 예견하지 못했었기 때문이다.
세계경제는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식량생산을 포함한 전 부분에서 비약적인 기술 발전이 이뤄졌고 의학기술의 진전과 함께 인간 수명이 늘어나는 동시에 인구 증가율도 낮아지면서 맬서스의 인구론은 인류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 갔었다.
최근 식량 가격 급등과 함께 맬서스의 비관론이 재조명을 받고는 있지만 곡물 생산 증대는 현재 기술로도 충분히 가능하다. 문제는 당장 늘리는 데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경작지를 늘리는 데 수년의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이러한 배경이 당분간 곡물가격이 상승세를 지속할 것으로 판단되는 근거인 것이다.
[이영권 명지대학교 겸임교수 및 세계화전략연구소(www.bestmentorclub.org)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