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세계 경제는 미국에 의해서 주도적으로 이끌어져 왔으며, 그 역할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만큼 세계경제에서 미국의 위치는 확고했다.하지만 최근 그 위치가 조금씩 흔들리고 있는 양상이다.
유럽연합과 일본에 이어 중국과 인도를 비롯한 신흥시장의 부상으로 세계경제의 축이 다극화 되어 가고 있다. 아직까지는 미국의 우위가 절대적이라고는 하지만 앞으로는 미국 혼자서 세계경제를 좌지우지하기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어 보이기 때문이다.
최근 미국의 서브프라임 사태로 불거진 세계금융시장의 혼란은 사건의 본질, 전개 및 해결책에 있어서 10년 전 우리가 겪었던 외환위기와 매우 흡사하다. 그 예로 금융기관의 방만한 운영 및 도덕적 해이, 감독당국의 안일한 자세, 과도한 투자에 따른 손실 등을 공통점으로 들 수 있다.
느슨한 통화정책으로 유동성이 과도하게 공급되고 도적적 해이와 감독 당국의 무능이 결합되면 최악의 국면으로 치달아결국 공포(fear)가 투자가를 혼돈에 빠뜨리고 시장은 걷잡을 수 없는 공황상태에 빠지게 된다. 전 세계 주가가 유례없이 6개월 사이 20~30% 폭락한 현 상황은 공포의 초기 단계임에 틀림이 없다.
아시아 외환위기를 극복하는데 2~3년이 소요되었던 점을 감안하면 작년부터 부실 징후를 보였던 미국 모기지 사태는 빠르면 금년 말에야 해결의 실마리가 보일 것 같다. 우리가 외환위기 때 경험했던 것처럼 미국도 달러가 크게 절하되어 미국 기업의 수출 경쟁력이 살아나고 경쟁력 없는 금융기관들은 정리되어야만 할 것이다. 환란 후 아시아 기업 및 은행들이 미국 사모펀드와 헤지펀드에 매각되었듯이 이번에는 거꾸로 미국 금융기관, 기업 및 부동산들이 아시아 및 중동의 국부펀드, 금융기관에게 매각되면 미국 달러도 살아나게 되고 자산가격도 점차 회복될 가능성이 높아지게 된다.
미국이 경기 침체에 빠지고 국제금융시장도 빈사 상태를 보이는데도 세계 경제 전망이 어둡지 않은 것은 바로 신흥시장을 중심으로 세계 경제가 금년에도 꾸준한 성장을 보이고 내년에는 회복세를 나타낼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중국, 인도, 러시아, 브라질 등 신흥 국가들이 구매력기준으로 세계 경제 성장의 80% 이상을 기여하고 있고 특히 중국의 전 세계 경제성장 기여도가 30%를 상회하며, 인도도 공헌도 측면에서 일본은 물론 미국을 훨씬 앞섰다. 물론 미국 경기 침체 여파로 신흥 국가들의 수출이 다소 둔화되겠지만, 그 국가 내의 사회간접투자 및 소비가 내수를 견인하여 신흥 국가의 경제 성장을 주도할 것이기 때문에 세계경제에는 긍정적이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중국은 올림픽을 전후로 해서 사상 최대 규모의 인프라 투자를 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2007년부터 3년간 4000억 달러 이상을 쏟아 부을 것으로 예상되며, 2020년까지공항만 97개를 추가해 640억 달러의 자금이 소요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인도도 같은 기간에 취약한 인프라에 1100억 달러를 투자할 예정이고 고유가로 막대한 재정 흑자를 내고 있는 중동 산유국과 러시아 역시 각각 1500억 달러와 1850억 달러를 사회간접자본투자에 집행할 것으로 관측된다.
위에 열거한 신흥 국가들이 고속 성장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현재보다 훨씬 더 많은 금액을 인프라에 투자해야 하는데 세계은행은 신흥 국가들이 현재 수준의 경제성장률을 유지하기 위해선 현재 국내총생산의 2~4% 수준인 인프라 투자 금액을 거의 2배 수준인 5.5%까지 올려야 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최근 국제유가가 올라가서 부자가 된 중동 국가들이 다시 엄청난 오일머니로 세계 금융시장을 휘젓고 다니고 있고, 경제 성장이 큰 중국의 경우도 막대한 수출로 벌어들인 돈 때문에 외환보유고가 엄청나게 쌓였다. 이런 돈을 바탕으로 세계에서 돈 되는 건 모두 사들이고 투자하는 국부펀드(Sovereign Wealth fund)를 집행하고 있다.
돈이 많으면 그만큼 세계시장에서 영향력이 커지고, 권력관계도 변하게 된다. 지금까지 국제금융시장에서는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한 전통적인 머니 매니저들이 주도권을 쥐고 있었다. 하지만 이젠 치솟는 유가로 무장한 중동 투자자들의 '오일머니'. 막대한 외환보유고를 기반으로 한 국부펀드가 국제 금융가를 교란시킨다는 지적을 받아 왔던 헤지펀드와 사모펀드와 함께 전면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지난 1980년 일본 투자자들이 금융시장을 움직이기 시작했던 것처럼, 이제 미국과 유럽 외 투자자들이 국제자본시장의 시장 질서를 새로 짜고 있다. 이들의 자산이 꾸준히 늘어나면서 오는 2012년엔 약 20조7000억달러, 전 세계 연금펀드 자산의 4분의 3에 해당하는 규모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국부펀드를 보는 평가와 보는 시각이 다양하게 엇갈리고 있지만 아시아 국가들이 준비하고 있는 국부펀드 규모는 약 4800억 달러 규모에 달하는데 중국이 주축이 되고 있어서 중국의 영향력은 향후 점점 커지게 될 것이다.
오일머니의 경우 지난 2002년 이래 국제유가가 크게 오르면서 자산 규모가 향후 5년간 5조9000억 달러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국부펀드에도 오일머니는 큰 기여를 하고 있는 셈이다.
이와 같이 세계경제의 구도는 미국 단일국가 중심체제에서 유럽, 일본 그리고 신흥시장 국가들로 다극화 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세계경제의 새로운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 올 것이며 세계경제가 보다 균형 있게 발전할 가능성을 높여주는 것이라서 바람직하다고 판단된다.
다만 신흥국가들의 급부상은 세계경제에 분명하게 긍정적인 기여를 하고 있는 신흥세력이기는 하지만 미국중심에서 완전히 탈피하는 데는 향후 10여년 이상의 시간이 소요 될 것이기 때문에 조급하게 미국중심의 세계경제구조를 무시하는 우를 범하지는 말아야 한다.
[이영권 명지대학교 겸임교수 및 세계화전략연구소(www.bestmentorclub.org)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