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양을 막론하고 전통의 제례는 권력과 권위의 상징이었고 잔인하고 무서운 행사였다. 공자 시대가 기억하는 상고대는 은 나라로서 제사에는 순장의 순서가 있어 주로 전쟁 포로들을 산 채로 생매장하는 제물이 수반되었다.
서양의 제사 사례로서 구약의 야훼신의 제사에는 산 짐승을 그 자리에서 목을 쳐 제사상 주변을 피로 적셨고 비둘기를 날개를 꺽어 죽여 바쳤다. 야훼 신은 그 죽음의 냄새를 즐겼다고 한다.
이렇게 제사가 잔인한 것은 제사를 지내는 주체에게 강력한 귄력을 주어 타인이나 타 종족을 복종 시키려는 의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공자에게 이러한 잔인한 권력적 행사를 바로잡지 않으면 그가 어짐의 사상을 전파할 수 없었기에 어짐의 사상으로서 禮를 제시하였고 잔인하고 권위적인 제사로부터 절제되고 감사하는 마음의 절차인 周禮 즉 주나라 초기의 예절 법도를 설교하였다.
그 것은 은나라 문왕과 달기로 상징되는 폭정과 주지육림을 부정과 止揚의 대상으로, 주나라 무왕의 선정을 仁의 정치로 규정하고 춘추 시대의 무너진 도덕 규범을 복원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주 무왕 만으로는 선정이 옳다는 근거가 약했기에 사실은 권력투쟁의 결과일 뿐인 요임금과 순임금을 선의에 의한 왕위 선양으로 미화하고 그 반대쪽에 세습을 시작한 우임금과 은문왕을 악역으로 편집하면서 자신이 속한 동의족의 나라 은나라를 잔인하고 야만적인 나라로 채색하였다.
하지만 공자가 완성한 절제되고 엄숙한 그리고 정성스런 그 제사의 과정은 공자를 받느는 후세 특히 조선의 제사방식에서 다시 공자가 止揚했던 그 잔인한 권력의 절차로 회귀하였다.
양반들은 여자와 서자를 제사에서 배제하였고 제사의 초헌관은 장자 및 적자 남자로 한정하며 제사는 영반귀족의 인정절차로 회귀하였고 제사에 참예하는 자가 그렇지 못한자를 지배하였고 제사의 가치는 그 선조의 벼슬의 높이에 따라 좌우되었다.
그것은 공자가 자신의 출신까지 배반하며 이루고자 했던 사상의 반대였다.
왜 당태종은 고구려를 치기 전에 고구려에서 숨진 수나라 전사들을 위한 대대적인 제사를 거행하였는가? 왜 일본에 신하들은 죽어라고 전범의 신주를 받느는가? 왜 트럼프 일파는 찰리 커크의 장례식을 거국적 행사로 받들고 찬양을 강요하는가?
그것은 거기에서 전쟁과 야만, 잔인함과 지배, 배척의 명분이 나오기 때문이며
야훼신의 잔인한 제사는 빌로셋인에 대한 참혹한 전쟁 의지를 불러오기 때문이다.
이 잔인한 과정인 제사를 仁과 禮의 절차로 바꾸고자 했던 공자는 당시로는 엄청난 혁명적 사고의 주체였다.
오늘날 제사를 지내지 않는 사람들의 이유는 대개 그렇다. 이게 낡은 봉건적 권위의 절차이고 후손의 삶에 아무런 의미가 없고 힘들기만 하다. ...
하지만 제사를 지내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권력을 쥔 자와 노예된 자의 차이가 있음은 알고 있어야 한다.
제사를 남의 제사를 지내는 게 아니라 나를 키워주느라 헌신하신 부모님 그리고 그들의 부모님께 그 고마움을 잊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행위이며 나를 노예삼고자 나를 세뇌하는 엉뚱한 신 이민족의 신 그리고 그 절차의 내면에 숨겨진 잔혹성 증오와 갈등의 결의 같은 것에 휩쓸리지 않을 수 있는 나의 정체성의 확인 그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