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글을 길게 써야될 것 같습니다. 금융팀장님이 이해하여 주십시요. 힘들여 쓴글 삭제시키지 마시고요.
60년 전으로 회귀라, 미도,삼양,대지 종암 미아리 돌산을 에워쌓고 있던 극장 이름이다. 정릉 숲을 가기 위해선 미도극장을 1차선 도로를 내려가야 계곡으로 들어갈 수 있는 길이다. 사대문 안에 있던 명보,단성사 피카디리 대한 낙원상가 4층에 있던 00극장 등에서 상영된후 끝나면 재개봉되는 곳이 바로 미아리 돌산을 끼고 있던 극장들이였다. 종암동 실개천을 끼고 흐르던 장위천 월계천 옆엔 애환이 섞인 여인들의 눈물들이 개울물에 떨어져 중랑천을 거쳐서 한강으로 흘러가 고향을 찾아가는 눈물들이였다. 대공원이 들어서면서 화양리가 발전하고 중곡동 땅값이 몆십에서 몆백까지 올랐다. 그때부터 논밭이던 자갈밭이였던 곳 강남에 우후죽순처럼 빌딩들이 들어서더니 서울은 대도시의 풍경을 갖춰지게 되었다. 모래내에서 면목동까지 50번 버스를 타고 지친 몸을 끌고서 오가던 곳 그래도 한 때는 잊지못할 추억을 남긴 곳이다. 이제는 바람처럼 흩어진 사람들의 얼굴이 하나씩 다시 떠오른다. 이제와서 생각하니 글의 모태가 이곳에서 부터 시작된 것 같다. 동고동락했던 벗들은 북망산으로 떠난 이도 있고 이름도 모르는 많은 여인들의 고운 마음을 받기만 했던 철부지적 시절이였다. 그곳에서도 내 이름을 아는 이는 없었다. 보안대를 제대한 벗 하나는 춘천고를 나왔다는 박00은 갈 데가 없다고 하여서 wt 생활로 도와주었더니 기껏 수상하다고 000에 신고하여 군용트럭에 타고가다가 책임자가 노량진 근처에서 신원을 확인하고는 곧바로 하차시켜주었던 일들이 생생하게 떠오르고 있는 오늘이다. 굴곡진 삶에서도 쓰러지지 않고서 무탈하게 하늘에서 준 세 가지 복 중 두 가지를 받고 있다. 충만한 삶인데도 아직도 부족하다고 욕심을 부리고 있는 생이다.
지금은 백 세 시대라고 하고 있다. 유년기 20년 청년기 20년 장년기 20년 노년기 20년 황혼기 20년으로 나누니 딱 맞는 말이된다. 나는 아직 말년기를 보지 못했다.노년기에 머물고 있는 육체다. 요즘 기대수명은 남자 83세 여자는 87세라고 하지만 대부분 80에서 85세 사이에 북망산 여행들 떠나시는 것을 많이 보고 있다.
천명을 타고나야 말년기를 보겠지만 육체와 정신적 건강까지 다듬고 지킨다면 수명 또한 천신은 보게 할 것이다. 사람의 성정은 체면,자존심 부끄러움 염치 등이 없거나 사라지거나 느끼지 못하는 삶이라면,,, 체면 자존심이 밥 먹여주냐,하는 속담도 있지만 그만큼 무거움의 삶을 견디게 하는 것이 체면과 자존심이다. 자존심의 긍지는 곧은 대나무와 같다. 주자학에서도 선악의 심성에 대해선 뚜렷하게 후학들에게 선악설과 성선설의 답을 내놓지 못했다. 태어날 때 선한 뇌를 가지고 태어났지만 환경에 의하여 변하는 것이 심성이기 때문이다. 상반된 학문적 설파가 성악설과 성선설의 요체다. 인간의 뇌는 사용하고 쓸수록 용량의 깊이가 커진다. 그러기에 공부란 것은 버릴 것이 하나도 없는 인성의 영양체다.
범의 모습을 화폭에 담을 수 있어도 사람의 마음은 그릴 수 없다. 친하다는 벗의 얼굴을 보면서 이야기를 나눠도 이익 앞에선 마음은 천산처럼 멀다. 사람의 마음을 앞질러서 예측 할 수 없고 바닷물은 무게로 잴 수 없다. 원수를 맺는 것은 재앙의 씨를 심는 것이고 옳은 일을 하지 않고 착함을 버리면 스스로를 해치게 된다. 배 부르고 등 따스하면 온갖 유혹에 빠지기 쉽다. 어진 사람에게 재물이 들어오면 뜻을 손상하게 만든다. 어리석은 사람에게 재물이 쌓이게 되면 허물만 더 커진다. 가난한 정신은 지혜가 짧아지고 고통과 환란을 겪지 않으면 지혜가 자라지 않는다. 시비가 있어도 듣지 말고 외면하면 내일이 편안해진다. 남에게 이웃에게 정적에게 불쾌감을 주지 않는 행동은 미운 눈길을 받지 않는다. 자신의 이름을 비석에 새기지 말고 사람의 입에 새긴다면 돌에 새긴 글자보다도 더 오랜 세월 빛난다. 복이 다하면 빈공해 지고 권세가 다하면 원수가 된다. 스스로를 아끼고 겸손하면 교만과 사치는 침범하지 않는다. 명심보감 성심편에 있는 글 인용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