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들어 인플레이션이라는 단어가 연일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세계가 인플레이션 공포에 긴장하고 있는 상황이다. "인플레이션이란 '바람을 불어넣다' 또는 '팽창시키다'라는 뜻의 영어 'inflate'의 명사형으로 특정 기간 동안 재화나 서비스의 일반적인 가격 수준이 오르는 현상을 말하는데 보통 소비자물가지수의 상승률로 측정한다.
인플레이션의 가장 큰 부작용 중 하나는 사람들이 화폐 가치가 떨어질 것으로 판단해 현재 소비를 늘리고 저축을 꺼리게 된다는 점이다. 기업의 경우 경영의 불확실성이 커져 투자를 줄이게 되며 사람들은 주식이나 부동산 등 현물 자산을 사들이는 투기가 늘어나게 된다. 또 인플레이션이 장기간 지속되면 가계의 실질 소득이 줄어들어 소비가 부진해지고 내수시장 침체를 불러올 수 있다는 것이 문제이다.
과거 10년은 세계경제가 골디락스 경제 즉, 탄탄한 성장과 낮은 물가의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데 성공했기 때문에 '대안정(great stability)'의 시기로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지금부터의 세계경제는 이러한 상황에서 벗어나 인플레이션의 시대로 갈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 것이 문제이다.
과거 세계적인 인플레이션은 1970년대 1,2차 오일쇼크 때로서 세계 물가는 큰 폭으로 올랐다. 1차 오일쇼크 때인 1974년과 1975년에 선진 23개국 물가는 각각 14.3%, 12.1%씩 치솟았으며 2차 오일쇼크가 닥친 1979~1981년에도 선진국 물가는 연간 10.1~13%씩 올랐고 걸프전이 터진 1990년에도 선진국 물가는 5.4% 올랐었다.
1,2차 오일쇼크와 걸프전 당시의 인플레이션은 중동지역의 정정 불안과 이로 인한 유가 급등과 같은 경제외적인 요인으로 공급 측면에서 불거진 문제였다. 따라서 종전 등의 형태로 정치적인 갈등이 봉합되면 곧바로 석유 공급이 재개되면서 인플레이션도 잠재울 수 있었다.
최근 인플레이션은 유가 등 원자재 가격 앙등에서 촉발됐다는 점에서는 과거와 비슷하지만 원자재 가격이 뛴 것이 석유 여유 생산능력 부족 등 공급 요인 외에 중국 등 신흥시장 국가의 원자재 수요 급증이라는 수요 요인에도 기인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원유 이외에 곡물 등 다른 원자재가 폭넓게 오르고 있는데다, 투기적인 수요와 달러 약세가 맞물려 있다는 점도 다르다.
최근의 인플레이션은 글로벌한 현상으로 미국의 경우도 지난 1월 소비자물가가 전년 동기 대비 4.3% 급등해 16년 만의 최고치에 근접했으며 유로지역도 1월 인플레이션이 3.2%에 달해 14년 만의 최고치를 기록했다. 한국은 1월 소비자물가가 3.9% 뛰어올라 3년4개월 만의 최고치를 기록했고 중국은 11년, 사우디아라비아는 16년, 스위스는 14년, 싱가포르는 25년 만에 가장 높은 인플레이션을 경험하고 있다.
물론 역사적으로 보면 최근의 인플레이션은 아직 우려할 만한 단계는 아니라는 주장도 있지만 작년 4분기 이후 세계 각국의 소비자 물가 오름세가 눈에 띄게 높아지고 있기 때문에 세계가 다시 인플레이션 시대로 접어드는 게 아니냐는 우려를 낳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더욱 무서운 것은 경기 둔화와 인플레이션이 동시에 찾아오고 있어서 1970년대 이후 처음으로 스태그플레이션(경기침체속의 물가상승)의 징조가 엿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최근 세계적으로 물가 상승 속도가 빨라지고 있는 것은, 작년 이후 지속된 유가 등 원자재 가격 상승이 각종 소비자 가격에 본격적으로 전가되는 신호로 풀이되고 있다.
최근의 인플레이션은 아주 미묘한 시점에 찾아왔다. 글로벌 경제는 서브프라임발(發) 경기 침체를 우려하고 있는 중이었는데 인플레이션이 함께 닥칠 경우 중앙은행이 전통적인 인플레이션 대응 수단인 금리 인상 정책을 펴기가 어려워지기 때문에 인플레이션을 억제할 수 있는 여지가 크게 좁아진다는 점에서 위협적이다.
지금 미 연준(FRB)은 서브프라임발 금융위기가 실물 경제 위축으로 전이되는 것을 막기 위해 잇따라 금리를 떨어뜨리며 시중에 돈을 풀고 있고 경기 침체 우려가 날로 높아짐에 따라 FRB가 3월에 금리를 추가로 0.5%포인트 인하할 것이란 전망이 높아지고 있지만 이런 금융완화 정책은 물가에는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한국은행 역시 비슷한 딜레마에 빠져 있는 것이다.
문제는 글로벌 인플레이션의 원인인 원자재 가격 급등이 전혀 꺾일 기색이 없다는 사실이다. 국제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돌파했고, 백금은 온스당 2000달러를 돌파했다. 커피와 코코아, 차 값도 수 년 이래 최고치를 기록 중이다.
이러한 최근의 인플레이션 징후는 공급의 부족에서 오는 것이기 보다는 수요의 급증에서 오고 있는 것이다. 각종 원자재를 쓰는 신흥시장(중국, 인도 등)의 수요가 급격하게 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애그플레이션(agflation·농산물 가격 급등으로 인한 인플레이션)이라 불리는 국제 농산품 가격의 앙등 역시 비슷한 원인에 기인한다.
여기에 글로벌 투기자금이 2000년대 들어 글로벌 저금리에 따른 과잉 유동성으로 부동산과 주식 등에 투자하여 버블을 일으켰었는데 이번에는 원자재 시장에 눈을 돌리고 있는 것이 또 다른 원인이다.
한편 세계의 공장이라는 중국의 물가 상승이 글로벌 인플레이션에 또 다른 위협이다. 중국의 물가와 임금이 오르면 공산품 수출 가격이 오르고 이를 수입하는 선진국의 수입 물가가 따라 올라 인플레이션을 부채질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 있는 한국은 원자재를 거의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조치가 별로 없다는 것이 문제이다. 우리는 세계경제의 동향을 예의주시하면서 필요하다면 수입을 가급적 자제하고 생산성을 높일 수 있도록 노사가 협조하고 정부가 최대한 금리 등의 관리 가능한 요소를 적절히 조절하여 대응하는 조치를 취하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이영권 명지대학교 겸임교수 및 세계화전략연구소(www.bestmentorclub.org) 소장]